김광현 등 베테랑 건재
송승기 등 영건들 성장세
WBC 앞두고 이상적 신구 조화

지난 6일 잠실 KIA-LG전에 앞서 훈련 시간이었다. 중계 준비를 하던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외야에서 훈련을 마치고 들어오며 인사하는 한 선수를 보고 흐뭇한 표정부터 지었다. 정민철 위원은 “일상에서도 왼손을 아껴라”는 조언부터 건넸다. 그 순간, LG 좌완 손주영은 왼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정민철 위원은 올시즌 들어 한 단계 더 도약한 손주영에게 덕담을 이어간 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바라보고 건강한 레이스를 해주길 바랐다. KBO리그 161승의 레전드 출신 투수 전문가이기도 한 정민철 위원은 KBO 전력강화위원이다.
국내파 투수의 성장은 그 소속팀만의 기쁨은 아니다.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동력을 키우는 신호로 국내 야구인 모두에게 희망이다.

2006년·2009년 WBC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 정상을 다투던 한국야구가 2010년 이후 국제무대에서는 실패가 잦았던 것은 단기전과 토너먼트 대회에서 비중이 더 커지는 마운드 싸움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었다.
국내파 투수들의 경쟁력은 KBO리그 지표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만 해도 정규시즌 평균자책 톱10 가운데 국내파 투수는 6위 삼성 원태인(3.66)과 8위 LG 손주영(3.79) 둘 뿐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구도 변화 조짐이 선명하다. 12일 현재 무려 7명의 국내파 투수가 평균자책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개막 이후 3경기에서 21.2이닝 동안 2실점만 한 LG 임찬규가 평균자책 0.83으로 2위를 마크한 가운데 SSG 문승원(1.53·4위), KIA 김도현(1.56·5위), 삼성 원태인(1.59·6위), LG 송승기(2.00·8위), SSG 김광현(2.08·9위), LG 손주영(2.25·10위)이 뒤를 이었다.
올해는 개막 이후 타고투저에서 투고타저로 흐름이 변하고 있다. 12일 현재 10개 구단 전체 평균자책은 4.11로 지난해 전체 시즌 평균자책 4.91보다 16.3%나 떨어졌다.
공인구와 ABS 조정 등으로 투고타저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러나 투고타저를 이끄는 주된 동력은 당초 짐작과 다르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전례 없이 상향 평준화된 각 팀 외국인투수들이 투고타저 시즌을 끌어갈 것으로 보였으나 일단 출발 구도는 국내파 투수들이 주도하고 있다.
신구 조화도 이상적이다. 한국야구가 국제무대에서 으르렁대던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마운드를 대표하던 한화 류현진과 SSG 김광현이 모두 좋다. 김광현이 시간을 돌린 듯 다시 역동적인 피칭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류현진은 4경기 23이닝 평균자책 2.35으로 차원이 다른 베테랑 피칭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1998년생 손주영, 2000년생 원태인과 김도현, 2002년생 송승기 등 젊은 선수들이 성장판을 여전히 열어놓고 뻗어가기 시작했다. 갈수록 얇아지던 국내파 투수들의 뎁스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내년 3월 WBC C조에 일본 호주 대만 체코와 묶인 야구대표팀 코칭스태프 또한 희망의 사이즈를 키우면서 대회 준비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강인권 수석코치 등과 각 구장을 다니며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김원형 투수코치와 함께 투수 후보군을 대상에 놓고 전국 각 구장을 찾을 예정이다. 국내파 투수들이 각종 투수 지표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것은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