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세는 부분적으로 국내 생산을 장려하는 수단이다. 바이든 대통령 시절에도 공장 건설 붐이 일었다. 올해는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그 흐름이 다소 둔화됐다. 공장 설립은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면, 이는 경제적 진보가 아니라 역주행의 신호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경제 도약기에는 신기술과 새로운 업무 방식이 도입돼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졌고, 그 결과 생활 수준도 향상됐다. 하지만 진보의 과정에서 일부 직업은 사라지거나 해외로 이전되곤 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보수와 생산성을 갖춘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하려면, 이러한 일자리의 소멸은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도 기계화된 농업 덕분에 가능했다. 농업의 생산 효율이 향상되자 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해 공장에서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를 채웠다. 이후 농업은 지속적인 기계화를 거치며 고용 비중이 줄었고, 냉장 운송 기술은 해외에서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는 노동력이 더욱 생산적인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20세기 초 영국 여성의 다수는 가사노동에 종사했다.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에 등장하는 저택처럼 한 가구를 유지하기 위해 다수의 하인이 필요했던 시대다. 일반 가정의 세탁조차 며칠이 걸렸다. 오늘날에는 한국산 세탁기의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세탁이 끝난다. 가사노동에 종사하던 여성들은 더 생산적인 일자리로 옮겨갔고, 사람들의 능력은 보다 유용한 곳에 쓰이게 됐다. 그만큼 사회 전반의 생활 수준도 높아졌다.
제조업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노동자의 약 25%가 제조업에 종사했지만, 현재는 그 비중이 10% 이하로 줄었다. 이는 산업의 쇠퇴가 아니라 자동화와 글로벌 분업이 가져온 구조적 전환의 결과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그만큼 더 나은 보수와 생산성을 갖춘 직무가 등장했다.
미국 내 공장 신설이 자동화와 로봇 기술을 수반한다면, 이는 역사적 흐름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다. 로봇이 해외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미국의 제조업 고용을 늘리는 것이 목표라면, 이는 생활 수준 하락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노동자들을 생산적인 역할에서 끌어내어 자동화가 더 잘할 수 있는 덜 생산적인 일로 내몰게 된다. 이는 트랙터를 포기하고 낫으로 밀을 베는 것과 같다. 제조업 일자리 증가를 자랑하는 정치인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