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동학개미 울리는 K증시 대주주들

2025-02-27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1.

회사 실적이 나빠져 1년 전 주식시장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던 B사의 최대 주주이자 임원인 A씨는 재무팀으로부터 올해는 실적이 개선돼 관리종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보고받았다.

이는 주식시장에 공시되면 B사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는 호재성 재료였다.

A씨는 감사보고서 제출을 통해 이런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 차명계좌를 이용해 회사 주식을 매수해 이익을 봤다.

#2.

A사의 최대 주주인 B씨는 회계팀으로부터 자회사의 가결산 자료를 받았다.

연결 기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70%가량이나 급감했다는 내용이었다.

B씨는 서둘러 공시 전에 회사 주식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매도해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줄였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실적결산 시즌에 자주 발생하는 증시의 불공정거래 행위 유형이라고 소개한 사례다.

2022∼2024년 적발해 고발 등 조치한 미공개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부정거래 행위 등 3대 불공정거래 행위 건수가 169건에 달했는데 이중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이 17건으로 집계됐다는 내용이다.

시장에 공시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이 알게 되기 전에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줄였다는 얘기다.

대개 결산 실적과 관련된 정보가 이런 부정행위에 이용됐는데 좋아진 실적이 공개되기 전에 주식을 매입하는 것보다는 실적 악화 공시를 하기 전에 보유주식을 내다 팔아 손실을 피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제는 이런 불공정거래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 회사의 대주주나 임직원 등 내부자라는 점이다.

해당 혐의자 66명 중 65%에 달하는 43명이 대주주, 임직원 등 해당 회사의 내부 관계자였다.

아무래도 회사의 결산실적 관련 정보는 회사 내부자들이 먼저 접할 수 있으니 회사 안에서 들은 정보를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한 셈이다.

작년 7월부터 상장기업의 주요주주나 임원은 해당 회사 주식 등을 매매할 경우 한 달 전에 이를 공시해야 하는 사전공시 제도가 도입됐고, 임직원이 자사주를 매매하면 거래소가 이를 회사에 문자로 통보해주는 알림 서비스도 있지만 부정행위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장기업들의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탈출해 미국 증시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부정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우리 증시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경영혁신과 실적개선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대주주나 임원 등 내부인들이 미공개정보로 이익을 챙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겠는가.

개미들의 '국장탈출'을 막고 서학개미들을 돌아오게 할 국내 증시의 진정한 '밸류업'은 이런 부정행위의 근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hoonki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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