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공동체를 은은하게 유지시켜주는 장르”

2025-05-07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한 터전을 일궈내는 이들을 만나 ‘왜 문학을 하는지’ 듣는다.

“한강 작가의 소설도 그렇고 우리가 만든 모든 문학 작품이 결국은 더 좋은 세상을 얘기하더라고요. 더 좋은 삶, 더 나은 가치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사회가 어떻게 되는지 계엄 정국에서 우리가 목도했잖아요. 문학이란 우리의 공동체와 삶을 밑바닥에서 은은하게 유지시켜주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해요.”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안온북스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시인 서효인은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안온북스는 독자들에게 안온한 시간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2021년 4월 문을 열었다.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등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이정미 대표와 서 대표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서효인과 이정미, 직원 두 명이 전부인 작은 출판사는 햇수로 5년째인 올해 4월까지 모두 41권의 책을 펴냈다. 한 해에 적어도 10권 이상을 냈다는 얘기인데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꽤 왕성한 활동력이다.

출판사 설립 이후 지속해온 ‘네러티브온’ 시리즈는 안온북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처럼 보인다. 네러티브온은 신인 작가 등 안온북스에서 발굴한 작가들의 작품을 싣는다. 투자 비용 대비 판매 부수가 낮아 시리즈를 그만하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매년 쉬지 않았던 책이다. <왜가리 클럽>, <지구 종말 세 시간 전>, <구도가 만든 숲>,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눈송이 쥐기> 등 현재까지 5권이 나왔다. 이 대표는 “신인 작가의 지면을 넓혀보자는 취지로 신인만으로 이뤄진 잡지같은 책을 만들자고 해서 기획한 시리즈”라고 말했다.

김혼비, 정한아, 황인찬, 정세랑, 손보미, 구병모, 최진영 등 유명 작가들의 책도 안온북스 이름으로 찾아볼 수 있다. 출판사 설립 초기 나온 김혼비의 <다정소감>은 10쇄 이상 찍으며 안온북스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집 <쓰게 될 것>도 인기 책이다. 서 대표 역시 민음사에서 문학잡지 ‘릿터’ 창간을 주도하는 등 편집자로 일해온 만큼 두 사람이 편집자 일을 하며 쌓았던 네트워크가 지금의 출판사 일에 도움이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소설에 관심이 있다”(서효인)는 출판사지만, 장르는 다양하다. 배우 김신록이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쓴 <배우에게 배우가>라는 책도 있다. 인문학과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책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다만 시집과 판타지 혹은 로맨스 웹소설은 다루지 않는다. 시집은 이미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가 많고, 판타지 쪽은 두 사람이 잘 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해서다.

설립 이래로 꾸준히 일해왔지만 지난해 12·3 불법 계엄 사태 이후 한 번 더 주목받았다. 안온북스는 지난 3월 소설가 정보라를 비롯해 내란 사태를 규탄하는 시위 현장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시 만날 세계에서>를 내놨다. 같은 달 25일에는 한강을 비롯해 작가 414명이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한 줄 성명이 발표됐는데, 이를 기획한 것이 서 대표를 포함한 시인 몇몇이었다.

서 대표는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었음에도 계엄 이후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준 것은 아쉽다”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삶과 문학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규모 있는 문학 출판사들이 왕성히 활동 중인데 작은 출판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 대표는 “독자들에게도 한국 문학하면 떠오르는 출판사가 손에 꼽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내용이든 작가든 편집이든 책 디자인이든 다양한 출판사들이 책을 내며 여러 가지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결국 제2의 한강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올해도 10종 이상의 도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5년을 넘어 10년 이상 이어갈 안온북스의 미래에 대해서는 “인풋 대비 아웃풋을 내기 어려운 곳이 문학 출판”(이정미)이라며 “자본보다는 참을성”(서효인)으로 버티기 전략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온북스가 출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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