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악발토포(握髮吐哺)와 주공단(周公旦)

2025-09-15

공자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주공단(周公旦)이다. 그는 상(商)나라를 멸하고 주(周. 기원전 1046~기원전 256)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무왕은 주나라를 건국하고 3년 후 병사(病死)했다. 무왕의 유언에 따라 주공단은 섭정(攝政)이 되어 성왕(成王)을 보좌한다. 섭정 역할을 떠맡아 동분서주할 때, 어린 조카인 성왕을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좌에 오를 수도 있다는 의심을 자주 받았다.

이번 사자성어는 악발토포(握髮吐哺. 쥘 악, 터럭 발, 토할 토, 먹일 포)다. 앞 두 글자 ‘악발’은 ‘머리카락을 움켜쥐다’란 뜻이다. ‘토포’는 ‘먹은 것을 토해내거나 입 안의 음식을 뱉다’란 뜻이다.

섭정을 맡아 통치권을 대리 행사하던 시절에 주공단의 일과는 매우 분주했다. 머리를 감거나 식사를 할 때조차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간혹 귀한 방문객이 찾아오면 그는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나와 응대했다. 식사를 즉시 중단하고 현자(賢者)를 맞이한 일도 있었다. 그의 이런 치열한 업무 태도에서 ‘악발토포’가 유래했다. 병렬구조인지라, ‘토포악발’로도 쓴다.

정치가 주공단은 문왕(文王)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희단(姬旦)이다. 문왕 사후에, 둘째 형 무왕이 후계자가 됐다. 주공단은 강태공(姜太公), 소공(召公) 등과 함께 무왕을 도와 ‘목야(牧野) 대전’에서 승리하고 상나라를 무너뜨렸다.

단 한 차례 전투로 상나라를 무너뜨렸기에 무왕은 추가적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항복한 상나라 귀족과 백성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역시 큰 고민거리였다. 강태공은 과단성 있게 처단해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죄가 있는 자만 죽이고, 죄가 없는 자는 그냥 살려줍시다” 소공은 이런 절충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주공단은 이들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상나라 백성들로 구성된 작은 제후국을 만들어 관리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상나라를 토벌할 때의 강경한 입장과 너무 달랐기에 무왕이 그 이유를 물었다. 주공단은 이렇게 답한다. “잔혹했던 상나라 마지막 왕의 전철을 우리가 밟지 않으려면, 상나라 백성들을 잘 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동생의 이 사려 깊은 조언을 듣고는 무왕도 동의했다. 송(宋)나라를 세워 상나라 사람들을 거주하게 한다. 다만, 반란 예방을 위해 상나라 귀족들은 지금의 뤄양(洛陽)으로 따로 이주시켰다.

주공단은 자식들에겐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교육자였다. 어린 두 아들이 성왕을 방문할 때, 무슨 이유에서건 상하(上下) 위계를 망각하면 아주 엄하게 꾸짖었다.

주공단은 노(魯)나라를, 강태공은 제(齊)나라를, 소공은 연(燕)나라를 각각 분봉(分封)받았다. 그러나 주공단은 주나라 수도에 장기간 머물러야만 했다. 무왕 시절에는 상경(上卿)이었고, 성왕 초기에는 섭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대신해 맏아들이 노나라를 다스렸다.

주공단은 섭정에 머물며 7년 동안 바른 정치에 힘쓴 후 노나라 제후 자리로 복귀했다. 까다로운 숙제가 많은 건국 시기에 만약 그가 조카를 끌어내리고 왕이 됐다면 아무리 통치를 잘 했어도 주나라 역사는 다른 길로 들어섰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사익(私益)보다는 공동체의 운명을 중시한 주공단의 자제력과 통찰이 놀랍다. 꽤 까다로운 잣대로 인물들을 평가하던 공자가 주공단을 흠모했던 이유다. “오랫동안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했다(吾不復夢見周公)” 공자가 이렇게 아쉬워하며, 이젠 자신이 늙어버린 것 같다고 자조한 일화도 있다.

학문에도 관심이 많았던 주공단은 ‘주례(周禮)’와 ‘의례(儀禮)’를 저술했다. 역경(易經)을 보완하기도 했다.

주공단은 청동기 시대 인물이다. 그가 처한 거칠고 열악한 정치·경제 환경을 우리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고, 반란, 가뭄, 홍수 등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다양했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며 욕망을 자제해야 했고, 비교적 긴 안목으로 올곧은 선택들을 해낼 수 있어야만 했다.

악발토포. 그가 바쁜 하루 일정에도 불구하고, 현인들이 방문하면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환대했던 숨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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