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거시 미디어’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대해 갖는 공포. 이 부분이 더욱 확대되는 것일까. 티캐스트가 자체제작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퍼져 방송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태광그룹으로 미디어 계열사 티캐스트는 최근 콘텐츠 자체 제작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엄재용 티캐스트의 대표는 지난 17일 사내 공지를 통해 “회사는 고심 끝에 자체 제작을 중단하기로 하는 어려운 결단을 했다”며 “이에 따라 제작 직무 폐지, 제작팀의 해체, 제작 인력의 업무 재배치 등 불가피한 후속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엄 대표는 이러한 결정의 이유에 대해 “티캐스트 제작 분야의 매출과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티캐스트는 태광그룹의 계열사로 예능 전문채널로 최근 ‘노는 언니’ ‘토요일은 밥이 좋아’ 등을 방송한 E채널과 영화 전문 채널 스크린, 드라마 전문 채널 드라마큐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지상파를 제외한 케이블은 CJ ENM 계열이 주도권을 쥔 상황이지만 티캐스트 계열과 iHQ 계열의 채널들이 자생력을 유지하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티캐스트의 결정은 방송업계에 둔탁한 진동을 일으켰다. 당장 제작 중단 결정에 따라 출연 중인 연예인들 소속사에서 제작의 향방이나 제작진의 진로에 대해 다양하게 문의하기 시작했으며, 티캐스트에도 문의가 쇄도했다.
일단 티캐스트의 방침은 ‘일시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악화일로에 있는 ‘레거시 미디어’의 광고 수익성으로 봤을 때 앞으로 험난한 미래가 드리운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지상파와 케이블 등 방송업계에서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매체)’로 불리는 채널들의 위기를 반영했다.

실제 티캐스트 외에도 지상파 KBS의 경우는 수신료 분리징수의 여파와 광고 수익성의 악화로 올해 정원의 20%를 감축하는 고강도 감원을 예고했고, SBS의 자회사 SBS미디어넷과 JTBC자회사들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절차를 진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 유력 방송사의 경우에는 매각과 관련한 구체적인 소문들이 나돌면서 불안감을 높였다.
이런 가운데 티캐스트의 자체 제작 중단 소식은 업계에 더욱 우려를 드리우는 악재가 됐다. 케이블 업계 2위 수준의 PP(프로그램 제작사) 티캐스트의 어려움은 많은 지상파나 케이블의 산하에 있는 외주 제작사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방송가는 2010년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이후 큰 타격을 받고, 2020년대 초반 코로나19로 결정적인 수익 타격을 입었다. 이후 OTT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발달로, 방송 광고나 제작투자, 협찬 등이 뉴미디어로 몰리면서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를 재촉했다.

당장 어떤 방향으로 해결될지 모르는 티캐스트발 위기는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지 현재로는 미지수다. 하지만 방송업계는 ‘올 것이 오기 시작했다’는 불안감으로 한결 높은 공포감을 견딜 수밖에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