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실 출근을 강제하는 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됐던 뉴욕 오피스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대출 상환 기일이 다가왔는데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잇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하던 지난해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2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욕에 위치한 오피스 자산을 대상으로 한 상업용 모기지 담보 증권(CMBS) 규모는 올해 110억 달러(약 15조 2416억 원)로 늘어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CMBS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묶어서 만든 일종의 투자 상품이다. CMBS 발행 규모가 늘었다는 것은 오피스 등 자산에 대한 대출이 증가했고, 시장에서 이에 대한 리스크를 낮게 판단해 이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뉴욕 오피스 공실률은 크게 늘어났다. 재택 근무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오프라인 사무실 공간을 잇따라 줄인 탓이다. 여기에 기준금리까지 치솟으며 오피스 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2월 기준 오피스 자산의 CMBS 부도율은 11%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10.7%)를 넘어섰다.
그러나 기업들이 재택 근무를 중단하고 사무실 복귀를 명령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뉴욕멜론(BNY멜론), 버라이즌 등 뉴욕 소재 주요 기업들은 올해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주 3~5회 출근을 의무화하고 있다. 직원 간 협업을 강화하고 경제 불확실성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부동산 서비스 회사 CBRE에 따르면 맨해튼 미드타운의 2분기 공실률은 15.5%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2%에서 크게 회복한 상태다.
6번가에 대형 오피스를 소유하고 있는 파라마운트는 지난달 말 부채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을 위해 9억 달러(약 1조 2470억 원) 모집에 성공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는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부동산 개발업체 피셔 브라더스와 850만 달러(약 117억 7760만 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가운데 6억 달러 이상이 CMBS 시장을 통해 조달됐다. 이밖에 보르나도가 소유한 애플의 뉴욕 본사도 4억 5000만 달러(약 6236억 원)의 대출을 재조달했다.
특히 상징적 자산(트로피 에셋)이 아닌 오래된 건물에도 투자가 늘었다. FT는 6번가와 파크 애비뉴, 타임스퀘어, 펜실베이니아 역 인근 등 주요 상업 지역에서 이같은 현상이 뚜렷하다고 짚으며 공실 우려가 낮은 대형 오피스 자산이 다시 안전해지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미국 투자은행(IB) 포트리스의 자산담보증권 부서장 마리오 리베라는 "한동안 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오피스 자산이 다시 돌아왔다"며 "사무실 복귀를 요구하는 기업들의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부동산 신용 책임자 맷 세일럼도 "공실률이 감소하고 순임대료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투자자들은 일부 부동산 자산이 바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KKR에 따르면 올해 뉴욕 오피스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CMBS의 주요 매수자는 보험사들이었다.
다만 이같은 현상은 일부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리노베이션이 되지 않았거나 공실이 많은 오피스의 경우 여전히 투자 유치가 어려운 만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치 포인트 캐피털의 구조화 신용 부문 책임자 벤 헌세이커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라며 "파크애비뉴나 센트럴파크 뷰 오피스에서 단 두 블록만 떨어져도 상황은 꽤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