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 '한글문학 기획전', 고려인의 혼을 노래한 시인이자 작곡가 ‘정추’

2025-10-13

[전남인터넷신문]광복 80주년을 맞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이 한 세기 동안 이어온 고려인 한글문학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한글문학 기획전’을 열고 있다.이번 전시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이후,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고려인들이 한글로 써 내려간 문학 작품과 신문, 문예지 등을 한자리에 모아, 디아스포라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언어와 정신의 불꽃을 조명하고 있다.

전시 작품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시인이자 작곡가로, 유랑의 세월 속에서도 예술의 불꽃을 지켜낸 정추(1923~2013) 선생이다.

그는 음악과 시를 통해 고려인의 삶과 정체성을 노래한 예술가로, 최근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과 음악이 재조명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정추는 1923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해방 이후 평양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치적 혼란을 피해 모스크바로 건너갔으며, 1950년대 카자흐스탄으로 망명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활동하며 고려인 민요 수집, 창작음악 보급, 작곡 교육에 헌신했다. 그가 남긴 곡은 1,000여 곡에 달하며, 이 중 60여 곡은 현지 음악 교재에 수록되어 지금도 아이들에게 불리고 있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선율이 아니라, 망명과 이주의 역사, 공동체의 희망을 품은 서사였다.

정추는 시인으로서도 탁월한 감성을 보였다. 대표작 「정주도중)」에서는 전쟁의 폐허와 이산의 슬픔을 노래하며 “정주 관문 밖 풀은 우거지고, 바람은 전쟁의 냄새를 실어 나른다”고 읊었다.

또한 장편 한시 「동래회고」에서는 고향의 지리와 역사를 서정적으로 풀어내며,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시적 언어로 담아냈다.

그의 시는 노래처럼 울렸고, 그의 음악은 시처럼 깊었다. 비록 평생 조국의 땅을 밟지 못했지만, 정추가 남긴 선율과 시는 고향을 향한 또 하나의 다리가 되었다. 그는 말년에 “지나간 세월이 내 몸을 떠나도, 내 노래는 여전히 고향을 향해 불고 있다”고 썼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광주 고려인마을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공동체에서 울려 퍼지며, 망명 예술가의 혼을 되살리고 있다. 정추는 200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동백장(훈장)을 수훈했고, 2013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한 예술가의 기록을 넘어, 디아스포라 고려인의 정체성과 예술혼을 증언하는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다. 그가 남긴 한 줄의 시, 한 소절의 노래는 오늘도 이 땅의 바람 속에서 조용히 고향을 향해 흐르고 있다.

고려방송: 양나탈리아 (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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