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에너지 없이 재활용… GDP 늘 때 탄소배출 감축 ‘기적’ [심층기획]

2024-10-09

‘탄소중립 선도’ 유럽 가보니

석유파동서 에너지 교훈 얻은 덴마크

건물 리모델링·친환경 차량 적극 도입

신재생에너지 비중 80%까지 끌어올려

해상풍력사업 단일화… 원스톱 체제로

韓 4년6개월 걸린 인허가 넉달이면 OK

신재생에너지 비중 99% 노르웨이

국영기업,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 선두

2040년까지 30GW 규모 설비 추진중

韓은 신재생에너지 비중 10%도 못미쳐

“전세계 대비 15년 뒤처져”… 대책 필요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줄이기 위해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바꿔나가고 있다. 한국은 전체 소요전력의 9.6%를 친환경에너지에서 얻고 있지만 북유럽의 덴마크는 이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차량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남덴마크 쇠네르보르의 댄포스 ‘스마트 스토어’ 슈퍼마켓. 냉장고가 가동 중이고 실내등도 환하게 켜 있지만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는 않는다. 냉장고에서 나오는 냉열까지 재활용하면서 에너지 소비량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댄포스 관계자는 “냉각을 하게 되면 열이 나오는데 이 열을 재활용해서 지역난방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열도 가정이나 기업 난방에 활용한다.

◆슈퍼마켓 열 재활용해 지역난방으로

최고의 친환경에너지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거나 버릴 것 없이 재사용하는 에너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에너지효율 솔루션 전문 기업인 댄포스 본사 건물은 ‘프로젝트 제로(0)’를 실행 중인 도시 쇠네르보르에 자리 잡고 있다. 프로젝트 제로는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로 정한 2050년보다 20여년 앞서 2029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계획이다. 도시 전체의 에너지 공급원과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탄소중립에 기여하고 있다.

쇠네르보르는 2007년부터 지역사회의 시민·기업·정부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분야별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관리한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구 7만4000여명의 쇠네르보르시와 시민사회단체, 글로벌 에너지 관련 기업 등으로 구성된 민관 협의체다.

건물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리모델링됐다. 주택과 상업 건물에 태양광 패널 설치와 함께 지역 교통 시스템도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했다. 댄포스는 본사 건물의 생산시설, 시험 장비, 행정 사무실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배출되는 실질적인 이산화탄소량을 올해 말까지 ‘0’으로 줄인다는 목표다.

브라이언 시버그 프로젝트 제로 대표는 “기후변화 대응은 사람의 참여로 시작되며 프로젝트 제로의 성공 열쇠는 파트너십”이라며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재활용해 비용면에서도 효율적인 탄소중립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댄포스는 난방과 제조시설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지난해 2007년 대비 70% 수준까지 줄였다. 나머지 투입해야 하는 30%가량의 에너지는 모두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서 끌어왔다.

◆해상풍력 인허가 단축 정책 주목

1960~70년대 에너지 사용량의 99%를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했던 덴마크 경제는 1973년 석유파동으로 크게 휘청였다. 이후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에서 답을 찾았고, 정치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50년 만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렸다.

덴마크 정부와 3개 산업협회의 협력으로 2008년 설립된 비영리기관 ‘스테이트 오브 그린’의 이버 호이 넬슨 국장은 “덴마크는 1990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이 76% 성장하는 동안 탄소배출은 45%, 물 소비는 40% 각각 줄어들었다”며 “경제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탄소배출을 늘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덴마크가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가 탄소중립 선도국가로 우뚝 선 데는 ‘원스톱숍(One-stop shop)’ 정책이 주효했다. 원스톱숍은 해상풍력사업 인허가 창구를 에너지청으로 단일화해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여 인허가 과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한 정책이다. 덴마크 에너지청은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산하 공기업으로 에너지의 생산, 공급, 소비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독립 송전망을 운영하고 있다. 해상풍력 입지계획부터 발전지구 지정, 사업자 선정, 환경영향평가 승인, 발전사업 허가 등을 일괄 수행한다. 한국에선 해상풍력사업 인허가에 평균 4년6개월이 걸리지만 덴마크의 경우 그 기간이 4개월 남짓에 불과하다.

스티 우페 피터슨 덴마크 에너지청 부청장은 “전력이 필요한 주민들이 직접 ‘풍력발전 협동조합’을 설립해 주체적으로 풍력발전 정책수립에 참여한다”고 전했다. 이어 “의회에서 여야 합의로 새로운 에너지정책이 수립되면 최고 5~10년은 그 합의를 유지한다는 내용이 협정에 포함되어 있고 정책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만장일치로 다시 의결해야 한다”고 소개했다.

◆노르웨이, 부유식 해상풍력 선도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의 로갈란주 스타방에르는 ‘에너지수도’로 불린다. 세계적인 해상풍력기업인 국영 종합에너지기업 에퀴노르 본사가 있다. 에퀴노르는 전 세계에 가동 중인 상업용 부유식해상풍력의 절반 이상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전체 발전원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99.1%나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해 나가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노르웨이는 KPMG 인터내셔널 협동조합이 2021년 발표한 ‘탄소중립 준비지수’ 보고서에서 가장 앞선 국가로 평가됐다.

유럽 최대 석유·가스 생산·수출국인 노르웨이는 2040년까지 30기가와트(GW)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설비 구축을 목표로 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로갈란주는 노르웨이 에너지산업의 중심지이며, 석유·가스, 조선업을 통해 쌓아온 기술력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해상풍력발전 분야에서도 글로벌 선도 도시로 급격한 발전을 이뤄나가고 있다.

한국도 탄소중립 목표를 세웠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재생에너지 전환을 놓칠 위험에 처한 한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9.64%에 불과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인 30.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49%는 물론 아시아 평균 26.73%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30%’를 이미 달성한 전 세계 국가들에 비해 15년이나 뒤처졌다는 게 보고서 진단이다. 우리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1.6%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쇠네르보르(덴마크)·스타방에르(노르웨이)=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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