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요란했던 공공기관 개혁, 날아드는 낙하산에 ‘용두사미’ 우려 [尹정부 개혁점검]

2024-11-15

대통령 “공공기관 혁신 미룰 수 없는 과제”

정부 출범 초기 ‘혁신 가이드라인’ 발표

정원 감축·재정 효율 등 5대 분야 혁신

2년 지난 지금, 정원 확대에 낙하산까지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예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보고 느낀 것을 얘기하겠다. 공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하게 넓은 사무공간을 축소하고 호화 청사 또한 과감하게 매각하거나 임대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 고연봉 임원진의 경우 스스로 받았던 대우를 반납하고 과도한 복지 제도도 축소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취임 직후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을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구체적으로 호화로운 청사를 매각하고 고연봉 임원의 권한 자진 반납을 주문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개혁 의지를 내보이자 기획재정부 등은 즉각 대책 강구에 나섰다. 기재부는 그해 7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 5대 분야 효율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기능 측면에서 민간과 경합하는 대목이나 비핵심 분야, 수요 감소 기능은 과감히 축소 조정하기로 했다.

조직과 인력도 이듬해(2023년)부터 정원을 원칙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예산은 하반기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를 10% 이상 절감하는 내용을 담았다. 복리후생 또한 과도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고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제정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난 5년간 공공기관은 조직·인력과 부채 규모는 확대한 반면, 수익·생산성 악화로 효율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공공기관 인력은 문재인 정부 당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영향으로 11만5000여 명이 늘었다. 부채 규모도 국제유가 상승 등 원인으로 한국전력 적자가 커지는 등 총 83조6000억원 많아졌다.

기재부는 “공기업 영업이익이 하락하고, 이자보상배율 1.0 미만 기관도 대폭 증가했다”며 “전문가와 국민도 공공기관 비대화, 방만 경영을 큰 문제로 인식하고,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기재부 “인력 1만1374명 감축…혁신 성과”

기재부는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5대 분야 효율화를 위해 기관별 혁신계획을 받고 불요불급한 자산 매각 등을 추진했다. 공공기관 혁신 TF(전담반)를 구성해 기관별 혁신계획을 검토·조정하고, 분기별로 추진 실적도 점검하기로 했다. 특히 기관·부처별 혁신성과 노력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정부업무평가에 반영해 책임성과 효과를 키우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공공기관 개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2일 윤석열 정부 2년 6개월간의 성과와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 부문 인력 효율화 일원으로 국가직 공무원 정원을 약 3000명 감축하고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단순 업무를 효율화하고, 악성 민원 방지 대책 등 환경 개선에 나섰다”고 했다.

행안부는 인력 효율화와 정원 재배치 원칙 아래 통합활용정원제 도입 등으로 정부 출범 당시에 비해 국가직 공무원 정원을 75만6301명에서 75만3295명(6월 기준)으로 3006명 감축했다고 설명했다.

유사·중복 및 활동 미비로 비판을 받아온 각종 행정기관 위원회는 총 636개 중 39% 수준인 245개 위원회 대상으로 적극 정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행안부는 “지방 공공기관은 과감한 구조개혁·통폐합으로 올해 6월까지 총 46개를 감축하고 방만 경영 요소를 집중 점검·정비했다”며 “지방보조금 부정수급 근절을 위한 지방보조금시스템(보탬e)도 전면 개통해 보조금 지급 전 단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기재부 역시 공공기관 전체에서 지난해 기준 정원을 1만1374명을 감축해 공공기관 혁신계획을 초과 달성했다고 성과를 자랑했다.

정부 평가와 달리 공공기관 개혁이 반쪽에 그치거나,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게 공공기관 정원 확대다.

정원 줄이라더니 신규 채용은 늘려라?

기재부는 지난해 기준 정원을 1만1374명을 감축해 공공기관 혁신계획을 성공리에 이끌었다 했지만, 일부 공공기관은 올해 들어 정원을 다시 늘리고 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전체 공공기관(부설기관 포함)의 절반 이상(54.2%, 184개이 지난해보다 정원을 늘렸다. 이 가운데 77곳(22.7%)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적용 이전보다 오히려 정원이 많아졌다.

공공기관 정원 확대는 정부의 엇박자 행보도 이유 중 하나다. 정부는 효율화를 이유로 정원을 늘리지 말라고 주문하면서도 청년 취업률을 이유로 신규 채용은 독려해 왔다.

지난 2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에서 “어려운 민간 취업 여건에서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올해 공공기관 신규 채용 인원을 전년보다 2000명 많은 2만4000명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낙하산’ 인사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공기관경영정보공개시스템 등을 통해 공공기관별 임원현황 및 연간 보수액, 직무 연관성 보유 여부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인 140명이 각 공공기관에 기관장 등 임원급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맡은 업무와 관련한 전공이나 경력이 전혀 없다. 이러한 행태는 공공기관 혁신을 외치던 정권 초기부터 이어져 왔다.

오히려 ‘혁신’을 이유로 공공기관 주요 인사를 물러나게 만들고 그 자리에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을 앉혀왔다는 비판도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말했던 것과 배치된다.

김태윤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인사는 공공기관 운영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제도가 정교하게 마련돼 있다”며 “그런데 이런 절차가 무의미하게 대통령실 마음대로 하는 인사로 전락해 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현재 공공기관이 처한 사정이 어렵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와서 해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장 망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낙하산 인사가 되면) 기관이 병들어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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