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반도체 등 주력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아직 개별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예상되는 정책 변화에 따라 환율·주가 등 금융시장이 먼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수 부진이 깊어지는 가운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반도체의 뒤를 이을 다양한 미래 먹거리를 어떻게 발굴해낼지 새삼 고민이 깊어진다. 국익과 안보를 위해 어떤 대내외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국가전략산업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 바이오는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뒤를 이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대표 산업이다. 윤석열 정부가 ‘3대 게임체인저’인 인공지능(AI)·바이오·양자에 우주를 더해 선정한 4대 전략기술의 한 축이다. 국가바이오위원회의 위원장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고 산(産)·학(學)·연(硏)·병(病)의 민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에서 바이오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학연병이 연계돼 세계 최대 바이오클러스터로 성장한 미국 보스턴바이오클러스터의 한국판 프로젝트가 이제부터 본격 가동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하지만 기대감만큼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범부처를 총괄하는 바이오컨트롤타워가 설치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각 부처로 흩어져 있던 바이오 분야 정책과 예산이 혁신위를 통해 교통정리되고 일사불란한 규제 개혁과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혁신위는 출범 1년여 동안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열린 몇 차례 회의도 혁신위를 설립한 목적에 맞게 내실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혁신위 출범 이후에도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등이 각각 정책과 연구개발(R&D)을 다뤄 분절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와중에 새로 출범하는 국가바이오위원회는 혁신위 활동을 더욱 위축시키는 ‘옥상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출범하면 혁신위는 규제 개선에 초점을 두는 역할로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바이오위원회는 혁신위와 달리 과기정통부가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혁신위를 주도했던 건 복지부였다. 혁신위 부위원장은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다. 국가바이오위원회 부위원장은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총장이 맡았다. 김 병원장은 백신, 신약 개발, 진단 등 보건의료 분야인 레드바이오 전문가다. 이 부총장은 그린바이오·화이트바이오 전문가에 가깝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민간에서 맡는 부위원장이 그린·화이트바이오 전문가라는 점에서 레드바이오가 주력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정부의 각종 위원회를 보면 부처 간 칸막이를 넘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오히려 부처 간 불협화음으로 범정부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바이오 분야도 그동안 레드바이오·화이트바이오·그린바이오를 맡는 부처가 제각각이다 보니 정책과 예산이 분절돼 있었고 혁신위 같은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는데도 제 기능을 못했던 게 사실이다. 국가바이오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이라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국정 동력이 크게 떨어진 만큼 힘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국가바이오위원회의 가장 큰 역할은 첨단 바이오산업 활성화일 것이다. 바이오가 반도체 같은 국가기간산업으로 성장하려면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으로 가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그리고 수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기술 수출로 이를 증명했다. 국가바이오위원회가 이들 기업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한다. 부처 간 장벽을 허무는 일도 중요하다. 박상욱 과학기술수석은 3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거버넌스가 분절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바이오 분야가 국가바이오위원회를 통해 기초연구부터 임상과 상용화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의 기대가 기대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