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들의 섬’ ‘천국의 섬’ ‘사랑의 섬’ 발리(BALI)...
인도네시아의 발리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특히 ‘신의 섬’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신들이 거주를 결정하는 지구의 낙원을 닮았다고 불린다.
발리는 1만 7000개 이상의 섬이 뻗어 있는 군도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힌두교 문화적 영향을 받은 곳이다. 번화한 자바섬과 롬복의 매혹적인 아름다움 사이에 자리잡은 인도네시아의 가장 빼어난 관광지다.
인도네시아 인구 2억 7000만 명 중 400만 명에 불과하지만 웅장한 경치와 활기찬 문화로 가득한 곳이 발리다. 발리는 현지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토착 신앙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연, 종교, 음식 등 측면에서 독창적인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문화인류학자 정정훈이 펴낸 ‘신들의 섬을 걷는 문화인류학자’는 발리에 대한 문화적인 보고서다. ‘발리’, ‘문화인류학’,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접목한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이 돋보인다.
그는 실제 발리섬에 오랫동안 살았다. 이미 ‘도시로 보는 동남아시아사 2’에 발리섬의 ‘우붓(기안야르)’과 ‘자카르타’편을 집필하기도 했다. 저자 정정훈은 “어렵고 힘든 시기. 남태평양의 작은 섬, 발리에서 살았던 문화인류학자의 소소한 일상이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힌두교를 믿는 발리인, 이슬람 인도네시아 주류 달리 돼지고기 요리 먹어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자 세계적인 관광지인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산다. 적도의 태양이 길러낸 신비로운 열대우림, 끝없이 펼쳐진 계단식 논, 예술인의 마을, 감칠맛 가득한 요리들이 유혹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찬란하게 엮어내는 ‘문화’라는 마법의 단어를 좇아 현지조사를 하고 연구했다. 발리에 대한 대표적인 표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수백 개의 종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에서 발리인을 다른 종족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종교적 차이다. 힌두교를 믿는 발리인은 인도네시아의 주류 종교인 이슬람과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음식 문화에서 돼지고기 소비는 발리인과 다른 종족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발리인은 정말로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를 먹는다. 자바인이 나시고렝과 미고렝의 재료로 닭고기와 염소 고기를 넣는 것과 달리 발리인은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선호한다. 아마도 돼지고기를 넣은 요리 중 발리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이 바비굴링일 것이다. 돼지를 뜻하는 ‘바비’와 무언가를 굴린다는 의미인 ‘굴링’이 합쳐져 음식명이 만들어졌다. 과거에 바비굴링은 의례나 축제 때 먹었던 새끼 돼지 요리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로 바뀌었고, 관련 식당들은 무게가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돼지를 요리해 손님에게 제공한다.” _83쪽
“다신교를 기반으로 하는 발리 힌두교는 섬 곳곳에 사원이라는 의미인 뿌라가 존재한다. 발리인에게 세상은 엄청나게 많은 신의 놀이터이고, 이들이 강림하는 사원 역시 발리 전역에 수만 개가 존재한다. 집, 마을, 일터, 관공서 등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머무는 모든 공간에 사원이 존재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세계 유수의 고급 호텔과 리조트 언저리에도 직원을 위해, 호텔이 위치한 마을을 위해, 호텔을 위해 사원이 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사원에서는 복잡한 종교의식이 펼쳐지고, 다채로운 음식과 오락거리가 제공된다.” _253쪽

■ “발리인들은 의례 자체가 삶을 지배한다”
발리인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다른 요소는 의례절차다.
저자는 “발리인에게 세속적 일상은 삶의 중심이 아니다. 의례 자체가 삶을 지배한다. 일상은 단지 의례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의례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가족, 가족과 마을 공동체 관계로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개인이 속한 가족 사원 오달란 의례가 있고, 발리의 달력인 사카력을 기준으로 새로운 해의 시작인 네삐 데이도 있다. 또한 반자르의 형편에 따라 조금씩 시기는 다르지만 마을 장례식과 성인식 의례가 마을 사원 오달란 의례 사이에 이어진다. 따라서 반자르 주민에게 의례 실천은 단순히 정화와 기복의 의미를 넘어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이다.

발리인은 오달란(odalan) 의례,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 각종 의례에 정성을 다하고, 의례가 일상을 지배하도록 한다. 천상계에 머무는 신들이 의례를 통해서만 땅에 강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붓의 뉴꾸닝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의례를 경험하고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오달란 의례에 대한 서술이 두드러진다. 사붕안이라 부르는 닭싸움, 제물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그봉안을 머리에 인 여성들의 행진, 마을 아이들의 레공 공연, 가믈란 악단의 연주, 뻐망꾸의 기도 의식 등이 3일간 이뤄진다.
“오달란은 빠우꼰 달력의 1년, 즉 210일마다 사원 창립일을 기념하는 의례다. 발리 전역에 사원이 수만 개 있으니 발리 전역에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오달란 의례가 치러진다. 오달란 의례의 절정은 마을 여성들이 층층이 음식을 쌓아 올려 높은 탑의 형태를 띤 제물인 그봉안(gebongan)을 머리에 이고 행진하는 모습이다. 뻐짤랑이 행렬의 선두와 후미에 서서 길을 만들고 주변을 통제한다. 마을 남성들로 구성된 가믈란 연주단이 흥을 돋우는 연주를 시작하고 그 뒤편으로 마을 여성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_255~256쪽
"성인식 의례도 인상적이다. “발리인의 성인식 의례의 핵심은 머상기mesangih라는 이 갈기 연행이다. 상깅sangging이라 부르는 브라민 계급의 사제가 머상기를 진행한다. 발리 전통에 따르며 날카롭게 튀어나온 송곳니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의미한다. 동물적 본능을 상징하는 송곳니를 갈아 줌으로써 본능적 행위에서 벗어나 성인이 된다.”(293쪽)
송곳니를 가는 의례는 인간의 여섯 가지 부정적 특성인 욕망, 탐욕, 분노, 광기, 혼돈, 어리석음을 없애려는 상징적인 행위다. 비록 인간은 송곳니가 4개만 있지만 발리인은 상징적 차원에서 6개의 송곳니를 간다고 표현한다.
■ 뉴꾸닝 마을에서 발리인과 외국인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저자는 신들의 섬이라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발리, 그 안에서도 우붓의 뉴꾸닝 마을을 찾아갔다. 적도의 태양이 길러 낸 신비로운 숲 너머로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뉴꾸닝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마을 의례인 오달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네삐데이, 장례식과 성인식,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관광업과 농업의 형태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인터뷰하며 기록했다.
저자가 현지 조사 지역으로 선택하고 장기간 머문 농촌은 뉴꾸닝 마을이다. 이름에 ‘노란 코코넛 마을’이란 뜻을 담고 있는 이 마을에 ‘노란 코코넛’은 없지만 친근하고 다정한 주민들이 장기 거주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발리인과 외국인 사이에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저자가 살았던 뚜가드 바뚜 하우스의 2층에는 여러 외국인이 머물다 가곤 했다. 소통의 문제로 집주인 와얀은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발리인의 스트레스 축적과 해소 방식은 독특하다.
“내가 겪어 본 많은 발리인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네모난 스트레스 상자를 배출하지 않고 마음속에 높게 쌓아 올리다가, 너무 높게 쌓인 상자가 균형을 잃고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그러면 스트레스 상자를 쌓게 한 사람을 찾아서 조금은 과하게, 때로는 폭력이나 욕설을 동반해 대응한다. 물론 스트레스 상자를 높이 쌓아 올리는 기술이 있고,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 항상 미소 띤 얼굴로 있어 스트레스를 유발한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한다.”(138쪽)라고 저자는 술회한다.
그렇게 와얀도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때로는 스트레스 상자를 신묘하게 쌓아 올리며 외국인 거주자들과 더불어 살았다.
■ “나는 발리인들과 삶을 나눈 문화인류학자”
문화인류학은 모든 사회의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문화를 비교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위해 인류학자는 현지 조사라는 방법으로 특정 지역을 이해하고 지식을 획득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다.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문화’라는 단어를 품고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으로 떠났다.
저자는 발리에서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 닭 울음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고, 야자수와 계단식 논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에서 점심을 먹으며, 작은 도마뱀 찌짝 소리에 잠이 들었다.
발리 사람들은 저자의 인터뷰이이자 함께 삶을 일구는 이웃이 되어 주었다. 한국에서 친구로 만난 아리와 그 가족들은 발리에서의 첫걸음을 함께했다.
우다야나 대학의 강사 에디완은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쳐 주고 늘 격려해 주었으며, 스바뚜 마을의 드위는 멋진 휴가를 선물해 주었다. 또한 저자가 머문 뚜가드 바뚜 하우스의 주인 와얀, 아들의 보모이자 주요 정보제공자가 되어 준 뿌뚜 등 여러 사람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발리 문화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발리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이해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발리인, 특히 뉴꾸닝 마을 사람들에 마음을 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정훈은?
정정훈. 문화인류학자. 관광인류학과 문화정책 분야의 연구자가 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해 동안 현지 조사를 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있다. 그 전에는 서강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에서 시작과 맺음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쉼 없이 지나며 동남아시아 연구에 빠져들었고, 발리로 현지 조사를 떠나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제목은 꽤 흥미롭지만 내용은 쉽지 않은 『노란 코코넛 마을: 발리 그리고 우붓 사람들』의 저자다. 적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뛰는 인생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기를 희망하며, 인도네시아의 사회와 문화에 관한 논문과 책을 꾸준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