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씨 가족은 모두 중증 천식 환자다. 두 아이가 깨끗한 공기를 마셨으면 하는 바람에 직접 고른 가습기 살균제가 화근이 됐다. 살균제에 포함된 유독 물질은 네 가족의 폐를 돌처럼 굳혔다. 대법원이 제조업체에 대한 유죄판결을 파기한 26일 김씨는 광장에 서서 “아이들에게 사과할 방법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법원이 기업이 아닌 ‘엄마 김선미’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환경운동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족 모임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대법원이 신고된 피해자만 8000명에 달하는 환경 대참사의 살인 기업들이 무죄라고 한다”면서 “그러면 도대체 누가 피해자를 죽였냐”고 했다.
김선미씨는 “저희 아이들은 엄마를 잘못 만나 아픈 아이들이고, 평생을 아플 아이들”이라면서 “대법원이 (기업이) 무죄라 했으니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한테 가서 아이들의 아픔을 보상받아야 하고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아이들이 탄원서에 ‘판사님 저희는 저희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이기 때문’이라고 적더라”고 호소했다.
가습기살균제 후유증으로 4년 전 아내를 잃은 김태종씨는 “SK와 애경이 무죄라면 내 아내는 자연사한 것이냐”고 울부짖었다. 김씨의 아내는 2007년 병을 얻어 13년1개월 동안 투병하다 2020년 8월10일 사망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내린 판사님에게 당신도 6개월만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보라고, 그러고 나서 죽나 안 죽나 한 번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면서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뒤집으면서 가해자 처벌은 더욱 어렵게 됐다. 최새얀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대법원 판단이 고등법원 판단을 구속하지는 않지만 보통 대법원의 판단 취지를 따라가는 게 일반적”이라면서도 “다시 싸워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함량미달의 판결”이라면서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따라 진행될 서울고등법원의 재판에서는 기업의 시장참여와 시장확대에 따른 책임을 더 명확히 하여 동일 용법의 제품들을 제조판매한 기업 임직원들의 안정성 검사 책임과 사후 관리책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명확히 하여야 할 것”이라며 “오늘의 대법원 판결이 기업들의 형사책임에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