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나 물건을 사러 방문한 가게에 문 열고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어서 오세요~”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이미 ‘옛날 사람’이다. 요즘 대세는 ‘무인(無人)’ 매장이다. 아이스크림, 곰탕, 스시, 떡, 꽃, 정육점, 헬스장, 테니스장…. 무인 매장이 골목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1990년대 물이나 기본 반찬을 고객이 직접 가져다 먹는 셀프서비스(Self-service)가 등장한 후 30여 년 만에 물뿐 아니라 모든 것을 고객이 ‘알아서’ 하는 무인 서비스가 등장했다. 유통업계에선 국내 무인매장이 10만 개 이상 있다고 본다. 국민 500명당 1곳 수준. 어느새 이렇게까지 늘었을까. 가게 주인은 인건비 절감 효과를 노린다지만 ‘그림자 노동’을 기꺼이 감수하는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하굣길 학생들의 참새 방앗간, 동네 주부들의 사랑방, 직장인에겐 쏠쏠한 부업으로 떠오른 무인 매장을 뜯어봤다.
1. 요즘 무인매장 클라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무인 분식집을 찾았다. 라면·햄버거·만두·마카롱·핫도그·아이스크림 같은 먹거리가 매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냉동식품은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라면은 셀프 조리 기계로 직접 끓여 먹으면 된다. 실내는 10평 남짓, 테이블 4개가 전부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 3명이 빵, 음료수를 먹으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11)군은 “학교 끝나자마자 거의 매일 온다”며 “편의점보다 싸고 친구들과 편하게 놀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옆 탁자에는 40대 남모씨가 4학년 딸과 함께 라면‧커피를 먹고 있었다. 남씨는 “이 건물 위층이 학원이라 하루에 두세 번 오기도 한다”며 “학원 이동 전에 못한 숙제도 하고 간식도 먹인다”고 말했다. 이후 이 가게를 찾은 12명의 공통점은 일주일에 5회 이상 방문하는 ‘단골’이라는 점, 다들 ‘싸고 편하다’는 걸 장점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혼밥’으로 라면과 만두를 먹으러 온 20대 남성은 “이전에는 편의점에 가서 간단히 식사했는데 여기는 편의점보다 물·냉동식품 등 값이 200~300원씩 저렴하고 직원도 없으니 눈치 안 보고 편히 있다 갈 수 있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앞서 26일 찾은 서울 노량진의 한 곰탕 전문점도 무인매장이었다. 10여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규모의 소매장 한쪽 탁자에는 놋그릇이 쌓여 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놋그릇을 골라서 육수통에서 육수를 따르고 큰 전기밥솥에서 밥을 뜨고 반찬통에서 깍두기를 가져다 먹으면 된다. 가장 큰 장점은 가격. 웬만한 곰탕집의 절반 수준이다. 돼지고기 곰탕이 5900원, 소고기 곰탕은 7900원이다.
직접 떠다 먹어야 하는 점이 귀찮기도 했지만, 국물과 밥을 한 번씩 리필해 가져다 먹을 수 있는 편안함이 더 만족스러웠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무인 초밥집도 요즘 ‘핫’하다. 모둠 초밥 10피스 세트가 9900원인데 SNS에선 ‘가성비 갑’ ‘대형마트 초밥보다 훨 낫다’ 같은 후기가 여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