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수전 매그새먼, 아이비 로스 지음
허형은 옮김
윌북
대부분의 사람은 귀를 파고드는 노래 한 곡, 가슴에 와 닿는 그림 한 점,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 한 편으로 마음속 안개가 걷히고 세상이 환해지는 경험을 한다. 상처 입은 마음이 위로받고 고통이 가라앉는다. 시야가 넓어지고 영감도 얻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예술마인드연구소를 창립한 뇌과학자와 구글 하드웨어 제품개발부 디자인 부총괄인 지은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사치나 도피 수단이 아니라 인간 생존의 필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고 강조한다. 음악‧미술‧영화‧연극‧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감상하거나 창작에 참여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공동체 구축에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예술이 인간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개인적 경험이나 인식을 넘어 자연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뇌과학과 예술의 융합 연구인 신경미학(Neuroaesthetics) 또는 신경예술(Neuroarts)의 성과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의료계에선 신경미학적 ‘처방’이 확산하고 있다. 미술관‧박물관 방문이나 음악 처방은 물론 특정 향을 처방해 매스꺼움을 잠재우고, 조명을 은은하게 조정해 신체 에너지 수준을 조절하며, 특정 음조를 사용해 불안감을 줄이는 처방까지 한다. 지은이들은 운동을 하면 성인병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기분을 밝게 해주는 세로토닌 수치가 향상되듯, 20분간의 낙서나 노래만으로도 정신신체 상태가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고된 성과는 놀랍다. 미국 버지니아 주 소방관 아론 밀러는 출동 현장에서 갑자기 과거 사망사건이 떠오르면서 맥박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지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아론은 표현예술 치료단체에서 미술 치료를 받았다. 과학적으로 효능이 증명된 치료법이다. 기능적 근적외선분광법(fNIRS) 검사를 통해 뇌의 변화를 살폈더니 낙서, 색칠하기 자유롭게 그리기 등이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간의 집중과 정보 저장, 감각정보의 의미 찾기를 도와주는 뇌 영역이다.
신경화학적으로 봤을 때도 뭔가를 그리는 행동은 관대하고 열린 태도를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자연 진통물질인 엔도르핀의 분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그림 그리기가 뇌파 활동을 변화시키고 대뇌 전두엽 부위의 혈행을 촉진해 심리적 회복 탄력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안고 전쟁터에서 귀환한 군인에겐 가면 만들기 작업치료를 제공한다. 예술 활동이나 작업은 사람을 명상과 비슷한 상태로 유도해 정신신체 기능을 조절해 만성적이고 트라우마적인 스트레스에 효과적인 ‘약물’로 작용한다고 한다. 예술을 적극적으로 창작하고 감상하는 과정은 가장 명상적인 행위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핀란드의 젊은 엄마는 항우울제 처방과 더불어 노래 부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산후 우울증을 극복하고 있다. 산모가 아이와 놀아주거나 노래를 불러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돼 이를 치료에 도입했다.
춤은 뇌의 기저핵과 소뇌 가동을 촉진하고 운동에 관여하는 운동 피질도 활성화한다. 춤을 추면 뇌가 자기 몸의 행동과 움직임, 그리고 자기 몸의 위치를 인식하는 고유수용감각의 스위치가 켜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춤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이 나아지게 하며 우울증도 물리치게 해준다.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세포의 활동도 증가시킨다. 요르단으로 피란한 시리아 여성들은 실내 밸리댄스 교습으로 몸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했다. 핀란드의 한 연구에서는 어릴 때 무용을 배운 남성들은 자기인식과 건강한 자아 정체성이 증대되며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아트도 한몫한다. 디지털 기술과 인지신경학을 융합해 집중력을 높이고 뇌 건강을 향상한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것은 물론, 학습자들에게 감각적으로 풍부한 가상환경을 제공해 학습효과를 높이며, 정보를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모두 뇌가 예술을 접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원제 Your Brain on Art: How the Arts Transform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