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랑데부'(연출 김정한)는 로켓 과학자 태섭과 춤을 통해 자유를 찾는 짜장면집 딸 지희의 사랑 이야기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며 가까워지는 과정을 다뤘다. '랑데부'(rendez-vous)란 '만남'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두 개의 인공위성이 만나 동일 궤도에 진입하는 비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넓은 우주에서 인공위성이 만나는 일 만큼 어려운 것이 사람 간의 인연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제목이라고.
남주인공 태섭 역의 배우 박성웅·박건형을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초연에 이어 이번 재연에서도 태섭을 연기한 박성웅은 "랑데부를 연기하며 내가 무대체질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초연에서는 배우 박성웅의 어두운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가벼운 톤으로 태섭을 표현했다면 이번엔 날 것의 박성웅, 날 것의 태섭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로켓 과학자 태섭은 수년째 요일별 메뉴와 식당을 모두 정해둘 만큼 통제 성향이 강하고 변수를 싫어하는 인물.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타인과 접촉 없이 살아간다. 재연에서 새롭게 합류한 박건형은 그런 태섭을 "신선함과 영양은 떨어지지만 그렇게 해서 유통기한(생명)을 연장한 멸균 우유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태섭과 정 반대 성향이면서 춤을 전공한 지희는 "그런 태섭에게 목장에서 갓 짜낸 우유를 마셔보라며 들이대는 사람"이란다.
둘은 아버지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가까워지고 점차 서로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게 된다. 태섭과 지희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은 대사보다 움직임으로 표현되는데, 특히 두 배우가 몸을 맞대고 선보이는 즉흥 춤이 극의 백미다.

"무언의 공간 속 둘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아름답고 섬세한 춤이 된다." 다소 불친절한 대본 속 한 줄을 배우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박성웅은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그 춤이었다"고 했다. "춤보다 행위 예술에 가까운 움직임인데 정해진 안무는 전혀 없는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애드립으로 모든 동작을 만들었다"면서다. "초연 때도 공연 회차마다 즉흥으로 동작을 바꿨고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5년 차 뮤지컬 배우인 박건형에게도 이 춤은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뮤지컬 안무는 집에서 혼자 연습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 춤은 지희와 태섭이 몸을 맞댄 채로 움직이는 데다 상대 배우가 그날 어떤 감정일지, 어떤 몸짓을 할지 모르니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라며 "동선은 최소한으로 정하고 즉흥성을 살려 무대 예술이자 시간 예술인 연극의 맛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두 베테랑 배우에게 연극 랑데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고 하자 이들은 "상처 입은 사람이 타인의 상처를 돌보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무대는 패션쇼 런웨이처럼 연출했다. 기다란 무대 양쪽을 관객이 둘러싼다. 배우 입장에서는 사방에 눈이 있는 셈인데, 무대와 객석의 거리마저 무척 좁다. 두 명의 배우가 한 번의 퇴장도 없이 100분 동안 극을 이끌어간다. 녹화된 화면이 아닌 연극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텐션'을 한껏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무대 위에 놓인 트레드밀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태섭과 지희 사이의 거리를 표현하는 장치다.
태섭 역에는 박성웅과 박건형 외에도 지난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로 연극계에 데뷔한 아이돌 그룹 '샤이니' 출신 배우 최민호가 캐스팅됐다. 자유로운 영혼의 지희는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이수경, 신인 배우 김하리·범도하가 맡는다. 공연은 4월 5일부터 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