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와 안보가 분리된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경제가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무기가 되었다. ‘경제의 무기화’는 경제가 지정학적 균열지점에서 상대를 제어하고 제압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상대의 경제적 공격에 취약한 나라는 안보에서도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게 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독일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에너지 공급이 중단될 경우,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12%까지 급락할 수 있다는 추정치가 나오자, 결국 독일은 공격용 무기 대신 방탄모만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이 독일의 손발을 묶은 셈이었다.
경제가 안보의 수단이 되는 시대
공급망의 무기화가 빈발하는데
정부 조직 분절되고 통합성 결여
연구에 기반한 정책 수립은 요원
반면 미국은 러·우 전쟁에 경제라는 무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내다보고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할 방안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 덕에 개전 직후부터 무역, 에너지, 금융을 망라한 ‘속사포 대형 제재’로 러시아의 경제력과 의지를 꺾어 놓았다. 러시아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파악해 집중적으로 공략한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우크라이나를 몇 주 내 점령한다는 러시아의 목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도 경제를 무기화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와 첨단 무기 생산에 필수적인 갈륨과 게르마늄 전 세계 생산량의 90%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이 두 핵심 광물의 수출 통제만으로써 미국의 관세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또 희토류 수입을 원하는 서방 기업에 군사용 전용 가능성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공급망 관련 각종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해당 기업뿐 아니라 상대국의 핵심 물자 공급망을 세밀히 파악해 필요할 때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대만 유사(有事), 즉 중국이 대만 해협을 봉쇄하거나 침공하는 경우를 대비한 군사적 대책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연구소의 최근 추정에 따르면, 중국은 군사적 조치 없이 전면적 무역 제재만으로써 대만의 국내총생산을 25% 감소시킬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이 입을 피해는 국내총생산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이는 총성 없는 경제전쟁이 중국의 최적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은 경제안보 취약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런데도 경제안보 역량의 진전 속도는 너무 느리다. 일본은 경제안보대신 직을 2021년에 신설했으며 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그 직을 역임했다. 내년에는 총리 직속으로 경제안보센터를 만들어 경제산업연구소(RIETI) 하에 둘 예정이다. 이 센터의 설립 목적은 경제·기술·외교·정보·군사 분야의 통합적 연구 및 정책 개발, 핵심 물자의 공급망 지도 작성과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이다. 지난 12월 중순에는 경제산업성 주관으로 미국, 유럽, 호주 등의 전문가와 외국 대사관 및 기업인을 초청해 경제안보 글로벌포럼을 개최했다. 영국과는 경제안보 파트너십을 맺었고 독일과는 협의체를 구성했다.
한국에는 경제안보의 사령탑이 없다. 경제안보와 관련된 역할이 부처 간 산재해 있어 통일성이 약하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담당 차장과 비서관이 있지만,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경제와 지정학에 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핵심 기술과 공급망, 국제협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지만 이런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외교부에 경제안보외교센터, 산업부에 산업자원안보실, 기획재정부에 공급망안정화위원회, 무역안보관리원 등이 있지만 조직명에서 드러나듯 칸막이처럼 업무가 나뉘어있다. 공급망, 경제, 기술, 외교, 군사가 모두 연결된 세계에서 이런 분절적인 조직만으로 경제안보를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미국은 백악관 조직은 물론 국무부에도 수석경제학자실을 두고 경제, 국제관계,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고용해 정책을 만들고 있다.
좋은 연구가 실효성 있는 경제안보 정책을 만든다. 데이터 기반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실시간 모니터링과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사전적 억지와 사후적 대응 역량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경제안보 조직에는 연구 기능이 빠져 있다. 기존 정책 연구에도 바쁜 국책연구원이 새로운 경제안보 연구에 인력과 자원을 대거 투입하기도 어렵다. 관세청 등 정부는 기밀 누설을 염려해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은 부처 간 합의로 데이터를 연구자에게 공개하는 결정을 내렸을 뿐 아니라 미국, 대만 등과 기업 데이터를 공동 분석하려고 작업 중이다.
현재의 지정학 갈등은 경제전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구화 시대 번영의 통로였던 초연결성이 이제는 무기가 된 형국이다. 탄약과 미사일, 드론만이 아니라 공급망, 무역, 투자, 금융이 안보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시대다.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AI MY 뉴스] 미·중·러·남중국해까지 2026년 지정학적 리스크 '상수'](https://img.newspim.com/etc/portfolio/pc_portfolio.jpg)

![[전동근의 대한민국 방산AI ⑥] 북한 자폭드론이 던지는 질문-비대칭 전쟁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2/29/news-p.v1.20251229.75ab28d255834658be60510a9d7bd27a_P1.png)

![[코인시황] 비트코인, 9만달러 회복 실패… 지정학 리스크 속 변동성 장세](https://img.newspim.com/news/2025/12/29/2512292033447640.jpg)
![[정책의속살] '10살' 됐지만 자라지 않는 한중FTA…정부의 2가지 고민](https://img.newspim.com/news/2025/12/29/251229164245914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