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가 일을 그만둔 지 1년이 됐다. 30년 넘게 일하다 처음으로 길게 쉬는 아빠는 그간 산으로 들로 다녔다. 봄에는 두릅을 따고 여름엔 감자를 수확하고 가을엔 밤을 주웠다. 그리고 겨울을 맞아 다시 취업을 준비한다.
아빠가 ‘제2의 인생’을 미리 계획한 것 같지는 않다. 하루는 “아빠 뭐 될 거야?” 물으니 “글쎄, 주택관리사 시험 쳐볼까?”라는 답을 들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되려면 주택관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단다. “경비 일도 고려 중”이라고 하는데 “딴거 하면 안 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빠가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몇 개의 장면과 수많은 이야기 때문이다. 아빠와의 대화 몇 주 전에도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해줬다. “경민아, 우리 살던 아파트 있잖아. 최근 젊은 부부랑 초등학생이 이사 왔는데, 애가 첼로를 켜나 봐. 그 애가 첼로 학원 끝나고 다른 학원에 급하게 가야 했는지 경비아저씨한테 첼로를 맡아줄 수 있냐고 물어봤대. 그런데 경비아저씨가 비싼 물건은 맡아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집에 올라가서 놓고 가라고 했대. 나중에 애 아빠가 경비실에 내려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대. 잠깐인데 애 부탁 하나 못 들어주냐, 내가 너 자르고 만다, 내가 누군지 아냐.…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나중에도 관리사무소랑 입주자대표회의에 가서 그 아저씨 해고하라고 난리를 쳤대.
그때는 별 미친놈이 다 있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빠가 미래에 그 난리통에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마자 갑자기 그 사람이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알아내 찾아가 혼쭐 내주고 싶어졌다. 상상만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지난봄, 나무를 너무 많이 가지치기한다는 제보를 듣고 찾아갔던 대단지 아파트도 떠올랐다. 관리사무소장을 만나고 있는데 한 주민이 관리사무소에 들어와 소장을 찾았다. 나무를 이렇게 베어내면 어떡하냐, 새들은 어디 가서 살라는 거냐며 고성으로 따지는 주민을 소장은 어렵사리 달랬다. 그때는 그 주민을 남몰래 응원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서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조용히 말해도 다 들린다고. 소장도 나무를 괴롭히고 싶어서 자르는 게 아니라 민원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라고. 당신이 그 민원 다 들어보라고.
일상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존중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콜센터에 전화할 때 나오는, ‘수화기 너머의 직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식의 문구를 비웃기도 했다. 누군가의 가족이 아니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건가 싶고, 가족이라고까지 상상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심했다. 그런데 그런 문구의 투박함과 별개로, 떠올릴 얼굴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가까운 사람의 정체성과 경험이, 눈을 마주친 사람들이 나누어준 이야기가 나를 재구성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인상 깊은 인터뷰를 하고 나면 관심사나 기사 쓰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들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장애, 성정체성, 빈곤 등을 조심히 다루게 된 것처럼 아빠 때문에 노년 노동을 다시 바라본다. 아빠를 아파트에서 일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빠 편에서 같이 싸우는 방법뿐이다.
가끔은 세상과 뭇사람을 향한 연대나 사명감보다 한 사람의 얼굴이 더 빠르고 강력하게 사람의 세계를 바꾼다. 마냥 편협한 마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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