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소리 흉내, 호흡·발음이 중요
표정·몸짓·습관까지 유심히 관찰
거울 보고 수백번 연습하다 보면
빙의된 듯 그 인물이 훅 들어와
모사를 개그로 승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내가 보여야 하는 게 철칙
가발 외에는 특수분장 안 해
분장 선생님과 많이 다투기도
SNL 초대 정치인들 대본 없어
악플 달고 항의하는 팬도 있지만
초대손님 대부분 마음 열려 있어
촬영 끝나면 꼭 사진 찍자고 해
다둥이 아빠의 삶 더없이 행복
아이들 등·하원에 목욕 챙기고
틈틈이 지자체 육아강연도 다녀
천사 다섯명과 사는 것 같아
“진짜 정성호는 모사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ㅋㅋㅋ” “미쳤다는 말밖에… 정말 역대 최고임.”
개그맨 정성호씨(51)가 유명인 안면·성대모사를 하는 영상에는 이런 댓글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목소리와 억양뿐 아니라 얼굴 표정과 행동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해 익살스럽게 표현하면서 커다란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최병서·김학도·배칠수·안윤상씨 등 성대모사 달인들은 그동안에도 많았지만, 패러디 대상 그대로를 붕어빵처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개그맨은 거의 유일무이하다.
정치풍자로 유명한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지난달 28일 정성호씨를 경향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그가 의도치 않았음에도 인터뷰 중 여러 인물이 목소리에서, 또 몸짓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코미디를 능가하는 정치와 암담한 경제 상황. 이런 현실에서 그의 풍자는 서민들로 하여금 팍팍한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절로 웃음짓게 만드는 유쾌한 자극이 되고 있다.
스트레스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 짜릿
-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요. 유튜브에도 정성호씨의 패러디 모음집 영상이 100만뷰 이상을 기록하더군요.
“개그맨으로서 정말 행복하죠. 유명 배우분들이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 연구를 위해 검색하다가 제 영상을 많이 보시게 된대요. 웃기다고 하세요. 웃기 위해 일부러 찾아본다는 분들도 많고요. 제 꿈이 사람들이 제 이름만 들어도 웃는 거였는데, 내가 열심히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해요.”
- 스스로도 모방 연기가 재미있습니까.
“너무 재미있어요. 신이 제게 주신 특별한 선물 중 하나예요. 연기할 때마다 긴장감으로 인해 심장이 진짜 격하게 뛰거든요. 사실 연예인 상당수가 병을 앓아요. 특히 저처럼 매일 심사와 채점을 받는 이들의 스트레스는 더하죠. 하지만 같은 상황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극도의 한계를 느낄 만큼 격렬하게 운동할 때는 꼭 죽을 것만 같지만, 그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런 경험을

- 최근 1년 새 인기를 끈 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전 총리,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패러디였어요. 포인트를 어떻게 잡았나요.
“한동훈 전 대표는 안경과 날리는 말투가 포인트예요. ‘제가요?’ ‘저는요’. 이런 거 있잖아요. 안경을 손으로 밀어올리며 말하고는 몸을 곧추세워요. 조국 전 대표는 머리숱도 많은 잘생김이 포인트인데 잘 들어보면 경상도 사투리가 세세요. ‘반드시이-’ ‘확쉴휘 샤람이’. 이때 말투와 입 모양, 강한 눈빛도 중요해요. 한덕수 전 총리는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입이 좀 비대칭이세요. ‘저는’이 아니라 ‘저른’ 그러는데, 입을 약간 틀어서 입술 위로 소리가 나오세요.”
- 조국 전 대표, 한동훈 전 대표의 경우 면전에서도 패러디했어요. 해당 영상들은 시청자들 사이에 ‘조적조’(조국), ‘거울치료’(한동훈)라 명명됐는데, 초대손님도 대본을 제공받거나 리허설을 합니까.
“그런 거 없어요. 두 분 다 제가 등장하는 것을 모르셨기에 깜짝 놀라셨어요.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났거든요. 그래도 다들 마음이 열려 있으시더라고요.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만나고 싶었다’며 꼭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사진 같이 찍자’예요(웃음).”
- 요즘엔 진영 갈등과 정치인 팬덤이 센데, 악플은 없나요.
“악플 많죠.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있잖아요. 해당 정치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을 흉내내냐고 해요. 또 왜 제가 이쪽 당 사람은 하고, 저쪽 당 사람은 안 하냐고 하는 분도 계시고요.”
- 흉내낼 대상은 어떻게 정하는데요.
“그 시기 가장 핫한 인물을 전체 회의를 통해 연기자들이 나눠서 맡아요. 이재명 후보는 배우 권혁수씨,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배우 김민교씨가 연기하기에 제가 안 하는 거예요.”

- 패러디할 인물을 직접 선택할 수는 없나요.
“초창기 서경석, 임재범, 한석규씨는 제가 하고 싶어 한 것이지만, 대다수 분들은 그렇지 않아요. 제 별명이 예스맨이에요. 안상휘 연출님이 ‘할 수 있어?’ 하면 무조건 ‘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죽어라 연습하죠. 추사랑도 마찬가지였어요. 하하하…”
- 평소 정치뉴스도 많이 봐야겠어요.
“많이 보죠. 그런데 특별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제가 패러디할 인물에 대한 탐구 목적이 커요. 그래서 연예계가 핫할 때는 연예뉴스, 지금처럼 미국과의 관세전쟁이 토픽일 때는 국제뉴스를 열심히 보면서 트럼프를 연구하죠.”
그는 197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화계초-도봉중-동성고를 거쳐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끼’가 많아 오락부장을 도맡았을 것 같지만, 외려 초등·중학교 시절 반장을 줄곧 맡았을 만큼 모범생이었다. 도봉중 대표로 KBS <중학생 퀴즈>에도 출전했다. 고교 시절 성적은 썩 좋지는 않았다. 재수를 하려다가 연예인들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서울예전 방송연예과(93학번)에 입학했다. 테리우스처럼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기타를 멘 채 교정을 누볐다.
임재범 패러디, 인생의 터닝 포인트
- 원래 꿈이 가수였습니까.
“아니에요. 대학에 들어가자 유재석, 최승경 형이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그리고 대학동기인 최상진 형이 자신이 출연하는 KBS 드라마 <굿모닝 영동>에 저를 출연하게 해줬어요. 대사가 세 줄뿐인 단역이었는데 그걸 못 외워 NG만 열다섯 번 냈어요. 그러곤 가수 준비를 했죠. 서울예전 음악동아리 ‘예음회’ 소속이었거든요. 92학번 선배 두 명과 댄스그룹 이프(IF)를 결성하고 도레미레코드사 지하에서 1년간 매일 춤 연습을 했어요. 그러다 제가 잘렸죠(웃음). 학교로 돌아갔더니 잦은 결석으로 제가 유급 상태더라고요. 이후 SBS 탤런트 시험 2차까지 붙었는데, 결국 최종 탈락 후 군에 입대했어요.”
- 전역 후는 어땠나요.
“복학해보니 동기 신하균은 이미 톱배우, 차태현도 탤런트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MBC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려는데, 사진작가 형이 ‘난닝구’ 차림으로 등산하는 모습을 촬영해 프로필 사진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야 심사위원들의 눈에 띈다고. 그런데 웬걸, 1차 서류전형에서 낙방하고 말았어요.”
- 좌절감이 컸겠어요.
“당시 HOT 문희준(97학번)도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죠. 그런 어느 날 숙취로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으로 유명한 주철환 교수님이 ‘성호가 방송 나오면 사람들이 참 좋아할 텐데’ 하시는 거예요. 귀가 번쩍 트였죠.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수님을 쫓아가 ‘방송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교수님은 ‘이번에 개그맨 시험이 있는데 한번 봐볼래?’ 하셨어요.”
1998년 총 다섯 명을 선발하는 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1400명이 몰렸다. 그는 주철환 교수의 ‘너, 서경석이랑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한마디에 사전까지 뒤져가며 서경석의 발성을 연구해 서경석 성대모사로 합격했다. 8년간의 무명생활을 거쳐 2006년 <개그야> ‘주연아’에서 과외선생님으로 출연해 한석규 성대모사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후 또 침체기를 겪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2011년 MBC <웃고 또 웃고> ‘나는 가수다’ 코너에서 가수 임재범을, 이어 ‘나는 하수다’ 코너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패러디한 일이다. 목소리와 말투뿐 아니라 헤어스타일과 의상, 표정, 몸짓까지 똑 닮아 큰 웃음을 안겼다. ‘싱크로율 100%’라는 찬사를 받았다. 성대모사 단계를 넘어 안면·성대모사로 진화한 것이다. 2012년 tvN
단순 흉내에서 끝나면 웃음은 없어
- 한 사람을 똑같이 모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호흡과 발음이 중요해요. 가령 돌아가신 김수미 선생님처럼 호흡이 길어 말을 거의 끊지 않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래서 오랫동안 복식호흡을 연습하고 발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책도 소리내 읽었어요. 지금은 해당 인물이 나오는 동영상을 100번 이상 봐요. 귀에 박힐 때까지 그의 말을 반복 청취 후 포인트를 잡아서 똑같아질 때까지 따라 해요. 표정과 손짓, 얼굴근육의 움직임, 습관도 유심히 관찰한 후 거울을 보고 수백 번 연습하죠. 그렇게 하다 보면 그가 저한테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어요.”
- 어떤 의미인가요.
“빙의라고 하죠? 내가 뭘 해도 이미 그 사람이 돼 있는 상태가 돼요. 그런데 이때 키포인트가 있어요.”
- 뭔가요.
“반드시 제가 보여야 해요. 제가 지워지면 3D 프린터로 누군가를 입체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그래서 분장도 똑같이 하는 것 같지만 제 얼굴이 드러나게 해요. 얼굴에 뭘 붙이거나 틀니를 하는 등 특수분장은 절대로 안 해요. 오직 표정과 가발, 일반 분장만 하죠.”
- 이유는요.
“모사를 개그로 승화시키기 위해서죠. 누군가를 똑같이 흉내내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사람들은 웃지 않아요. 저는 상황을 생각하죠. 예를 들어 한석규씨가 화장실에서 변이 안 나오면 어떡하실까?를 상상해요. 그분의 발성과 억양을 살려 ‘아이씨, 아우- 아우나- (허탈한 웃음이 스민 목소리로) 진짜 미치겠-네’ 이래야 사람들이 웃죠. 성대모사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웃음을 유발할 상황이 필요한 거죠.”

- 분장할 때 직접 의견 피력을 하나요.
“그래서 분장 선생님이 저하고 붙으면 한 서너 시간 다퉈요. 사람들은 옆에서 지켜보며 웃고요. 저는 패러디할 인물의 포인트를 강조하기 위해 그 부분을 과장되게 표현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분장 선생님은 그러면 이상해진다며 잘 안 해주시려고 하거든요. 그래도 결국 제 뜻을 관철시키죠(웃음).”
- 표정연기 탓에 주름이 늘겠는걸요.
“맞아요.
- 외국인 연기를 할 때 언어는 어떻게 구현합니까.
“상황에 따라 팝송이나 중국어, 일본어 노래 가사, 때론 한국어를 혀만 굴려서 외국어처럼 들리도록 말해요(웃음).”(빈 살만으로 분해 TV 앵커 역을 맡은 정상훈씨와 호흡을 맞춘 콩트에서도 그의 아랍어 구사를 유심히 들어보면 “저놈은 얼마나 벌라나?”를 혀를 잔뜩 굴려 발음한다.)
결혼할 때부터 다섯 명 낳기로 약속
그는 다둥이 아빠다. 2010년 경맑음씨와 결혼해 슬하에 2녀3남을 뒀다. 결혼한 해 첫아이를 낳고 5년간 네 명의 아이를 내리 낳았다. 아침 7~8시에 일어나 씻고 2022년생 막내를 어린이집에 9시까지 등원시킨 후 일하러 가는 게 그의 일과 시작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4시 하원도 직접 시킨다. 청소 등 집안일과 밤 11시에 막내를 목욕시킨 후 재우기도 마찬가지. 이후 아내와 대화하다 보통 새벽 2시쯤 잠든다. 그는 월·화·목요일은
- 어쩌다 다섯을 낳았습니까.
“아내가 워낙 아이를 좋아해 결혼할 때부터 다섯을 낳겠다고 했어요.”
- 힘들지 않나요.
“제 얼굴에 다크서클이 (손으로 양 뺨을 짚으며) 이만큼 내려왔어요. 중간에 막내가 깰 때가 많아 수면 부족에 시달리거든요. 하지만 행복을 얻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되는 대가라고 생각해요.”
- 다둥이 가족의 행복이 뭔가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아이들과 산다는 것은 천사 다섯 명과 사는 것과 같아요.”

- 돈 잘 버는 연예인이니 할 수 있는 말 아닐까요.
“넷째를 낳았을 때는 저희 부부 수중에 5000만원도 없었어요. 양육비를 벌기 위해 죽어라 일하긴 했지만, 아이는 돈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 키우나 다섯 키우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는 엄마아빠가 행복한 집이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날 수 있다고 봐요. 부잣집 아이라서 행복한 게 아니고, 가난한 집 아이라서 불행한 게 아니거든요.”
- 엄마아빠가 행복하기 위한 첫째 조건이 뭐라 생각합니까.
“정부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뭔지 파악해 채워주는 것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꾸 남과 비교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어요. 저희 부부처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행복해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 금실이 정말 좋은가봐요.
“넷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밖의 일에 집중해 성공하는 것만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매일 회식하고 밤늦게 들어오고 집안일은 등한시했어요. 코미디 일 자체가 밤샘 작업이 많으니까요. 당연히 부부싸움도 잦았죠. 그런 어느 날 아내가 다툼 끝에 말하더군요. ‘나중에 우리 둘만 남아. 알아?’라고요. 순간 멘털이 붕괴되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위한다는 아이들도 성장하면 다 곁을 떠나고 제가 가장 못 챙긴 아내만 남는 거예요. 그때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어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제가 아침 일찍 일어나더라고요. 집안일은 물론 아이들과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 일이 줄지는 않았나요.
“술 먹고 들어오던 일들은 사라졌지만, 다른 일들이 들어오더라고요. 큰애가 어느 날 ‘나는 아빠 같은 사람하고 결혼할 거야’라고 해요. ‘아빠처럼 엄마한테 다 해주는 사람 좋다’고요. 그러면 된 것 아닌가요?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