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과의 안전한 동행, 함께할 길

2024-10-28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식물의 병은 인류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농작물에는 녹병이나 깜부기병, 흰가루병 등의 병이 발생했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저지른 불경한 죄에 대한 신의 징벌로 농작물이 병들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에도 기록할 정도로 중요시하였다.

1600년대 중반 이후, 몇몇 과학자들이 농작물의 병이 신의 징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당시 과학기술로는 그 원인을 밝힐 수 없었다. 지금은 녹병이나 깜부기병, 흰가루병 등이 발생한 잎에 생기는 가루가 미생물의 포자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미생물이 죽은 동식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이 지배하던 시기에 그 포자들이 미생물의 ‘생명의 씨앗’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신의 형벌로 여겨지던 농작물의 병이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람은 독일의 식물학자 ‘안톤 데 바리(Anton de Bary)’였다. 1845년부터 2년간 아일랜드 감자산업의 몰락을 가져온 감자 역병의 원인이 병원 미생물이었다는 사실을 1861년에 밝혀낸 그는 오늘날 식물병리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식물 병 방제의 초석을 놓는 역사적인 사실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바로 오늘날에도 농약으로 많이 사용되는 보르도액의 발견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포도나무에 피해를 주는 흰가루병 방제를 위해 미국에서 수입한 묘목에서 포도뿌리혹벌레와 노균병이 유입되면서 프랑스 전역에 노균병이 크게 확산되었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피에르(Pierre A. Millardet) 교수가 우연히 푸른색의 가루가 묻은 포도나무가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포도를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농민들이 황산구리와 수산화석회를 섞어 만든 파란 용액을 포도나무에 발라놓은 것인데, 이 발견으로 보르도액이 탄생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재배 작물의 다양화와 농업의 규모화로 농약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보르도액의 발견 이래로 다양한 목적의 농약이 개발되었다. 1874년 합성된 DDT는 1939년에 스위스의 폴 뮐러가 뛰어난 살충효과를 발견한 이후, 유기염소계 살충제의 효시로 등장하였다. 1942년 독일의 슈레더는 독가스를 연구하다 유기인계 살충제를 만들었고, 포코르니는 1941년 최초의 제초제인 2,4-D를 개발하였다.

친환경 안전 농산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농업이나 유기농업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현대농업에서 농약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식물 병 방제를 위해 농약에 의존해 왔으며 농약이 안정적인 식량 생산과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이바지해온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9개의 작물을 대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의 수확량을 조사한 결과, 미국에서는 55~100%, 일본에서는 20.9~63.4%(복숭아는 100%)까지 감소하였다. 그러하기에 농약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식품 잔류, 환경오염 등 부작용이 있음에도 농약 사용의 전면 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에 주목하면서 농약은 국가 차원에서 개발부터 등록까지 의약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철저한 안전성 평가를 통해 관리하고 있으며, 등록 이후에도 사후관리로 안전성을 보장하고 있다.

현장의 농업인들도 농약 사용에 있어서 약제의 특성에 맞게 사용하고 규정을 철저히 지키며, 적당한 시기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 작물과 병에 맞는 약제를 선택하고 수확 전 마지막 살포 시기와 살포농도 및 살포량 등 안전사용지침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농약과의 안전한 동행.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

박진우<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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