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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케이스
윤희숙 지음
천년의상상
콜드 케이스는 장기 미제로 남은 범죄사건을 뜻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그동안 모든 정권에서 ‘폭탄 돌리기’ 하듯 방치해온 5가지 장기 미해결 과제와 그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신문 칼럼과 전작 『정책의 배신』, 『정치의 배신』에서 명쾌한 논리와 글솜씨를 보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의 경제학자 윤희숙. 그는 “지금 새 판을 짜지 않으면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리에겐 정말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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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꼽은 한국 경제의 콜드 케이스는 경제 운영체제, 노동시장, 국민연금, 의료시스템, 교육의 전면적 개혁이다. 정치인과 관료 등 ‘윗선’의 구시대적 태도와 규제 같은 후진적 경제시스템에 날 선 비판을 날린다. 엘리트의 헌신과 자기규율은 사라지고, 특권만 남았다. 스마트한 규제를 위해 규제개혁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도록 민간위원장 상근화 등을 제안했다. 저질 규제를 양산하는 의원 입법을 제어하기 위해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하고, 잿밥을 바라고 폼이나 잡기 위해 여의도에 입성하는 이들을 막으려면 국회의원 보수를 평균적인 가구소득 수준으로 대폭 낮추자는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노동시장 개혁은 대기업·공기업·정규직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위주의 2차 노동시장이라는 이중구조를 깨는 게 관건이다. 저자는 “비정규직 자체를 현실에 맞지 않게 틀어막으면 온갖 편법만 난무하고 취약계층의 취업 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외국처럼 비정규직 고용기간 규제는 풀고 차별은 더 엄격히 관리하자고 제안했다.
경제학자 중에는 의대 증원 문제로 불거진 의사의 집단이기주의에 비판적인 이들이 많다. 의사 증원 반대를 공급 제한에 따른 경제적 지대 추구행위로 보기 때문이다. 한데 저자는 그동안 의사 개인의 선의와 희생에 의존해온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역사를 짚으며 개혁을 위해선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과의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연금 고갈 시점을 몇 년 미루는 개혁을 넘어, 향후 70년간 고갈되지 않게 하는 필요보험료율이 몇 퍼센트인지 명확히 밝히고 그 수준으로 어떻게 옮겨갈 것인지 경로를 제시하고 야당과 합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혁의 부담을 여러 정부가 나눠야 한다는 주장인데 설득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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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저자가 쓴 『정책의 배신』과 일부 내용이 겹치지만 그간 국회의원 생활과 사퇴 이후 대중 강연 등으로 고민이 깊어진 덕분인지 구체적 해법이 많이 보인다. “청년들에게 ‘피박을 씌우는’ 정년연장이 아니라 ‘임금을 조정한 계속고용’으로”처럼 대중의 언어를 구사하고 자신의 에피소드를 친숙하게 녹여낸 점도 이 책의 미덕. 노무현 정부 때 복지지출을 늘리면 당장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를 주문한 청와대·기획재정부 관료의 힐책과 압박을 견뎌내는 일화는 웃음을 자아낸다.
저자는 지금 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 하지만 문제 제기와 해법은 정파적이지 않다. 저자의 합리적 주장에 대해 윤석열 지키기에 여념 없는 국민의힘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잘 모르겠다. 콜드 케이스 몇 개라도 우리 정치권이 해결의 단초를 찾았으면 한다.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