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가장 높이 날아올랐다. 8연승 후 2패, 다시 12연승. 승률을 무섭게 끌어올린다. ‘환골탈태’가 뭔지 보여주고 있다. 한화는 올 시즌 40경기에서 27승13패를 기록했다. 지난 네 시즌 같은 기간 성적은 8→10→9→9위였다. 올해는 1위다. 최근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14경기를 연속 매진시켰다. 역대 KBO리그 단일팀 최다 연속 경기 매진 기록 타이다. 손혁 한화 단장은 “좋은 성적으로 시즌 끝까지 완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전히 부상 선수가 나올까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며 “감독님이 연승 기간에도 선수들이 너무 들뜨지 않도록 분위기를 잘 잡아주신다”고 박수를 보냈다.

◆김경문 리더십=한화는 오랜 기간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그 여파로 매년 리그 최정상급 유망주를 ‘수집’했다. 2021년 8월 1차 지명한 광주 진흥고 투수 문동주가 대표적이다. 광주는 KIA 타이거즈 연고 지역이지만, 한화는 전년도(2020시즌) 최하위 팀 자격으로 ‘전국구 1차 지명권’을 얻었다. KIA가 그해 ‘야수 최대어’ 김도영을 데려가자 한화는 망설임 없이 문동주를 잡았다.
전면 드래프트가 부활한 이듬해(2022년)에도 2021시즌 최하위의 ‘특권’을 활용해 서울고 투수 김서현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이후에도 장충고 투수 황준서(전체 1순위), 전주고 투수 정우주(전체 2순위)를 잇달아 데려왔다. 이들 중 4년차 선발 문동주, 3년차 마무리 김서현, 1년차 불펜 정우주가 모두 연승 행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5월 지휘봉을 잡은 김경문(67) 감독은 젊은 선수가 많은 한화 선수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면서 베테랑 사령탑의 노하우를 보여줬다. 현역 최고령인 김 감독은 최연소인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44)보다 23살 위다. 김 감독은 자신의 상징인 강한 카리스마는 잃지 않되, 달라진 현장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유연성을 더했다.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와 더그아웃에서 선수를 오래 지켜보고, 한 번 주전으로 선택하면 기회를 꾸준히 준다. 반면 시행착오는 즉시 바로잡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는 주저하지 않는 결단력이 빛난다. 일례로 김 감독은 시즌 초반 뒷문이 흔들리자 마무리 투수를 빠르게 김서현으로 교체했다. 김서현은 남들보다 출발이 늦었는데도 벌써 12세이브를 올려 이 부문 선두에 올라 있다. 김서현은 “가장 힘든 시기에 감독님과 양상문 투수코치님이 오셔서 많은 기회를 주셨다. 더 열심히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최강 선발진=한화는 외국인 투수 ‘복’이 없었다. 최근 수년 간 많은 외국인 투수가 한화를 거쳐 갔지만, 누구도 리그를 압도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올해는 다르다.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가 10개 구단 중 최고 원투펀치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폰세는 9경기에서 59이닝을 던져 7승 무패, 평균자책점 1.68이다. 탈삼진(75개)은 전체 1위, 다승·평균자책점·투구이닝은 2위다. 와이스도 9경기에서 6승1패, 평균자책점 3.36으로 제 몫을 다했다.
폰세의 통역으로 늘 함께하는 김지환 씨는 “폰세는 외국인 선수지만, 팀의 리더 역할도 한다”며 “특히 더그아웃에서는 활발한데, 늘 상대 타자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진지하다. 놀기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폰세와 와이스를 필두로 한 한화 선발진은 올 시즌 선발 평균자책점(3.08), 승리(22승), 탈삼진(240개), 피안타율(0.222)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10개 구단 중 1위다. 완벽한 외국인 원투펀치가 앞에서 끌고, 류현진-문동주-엄상백으로 이어지는 국내 선발진이 뒤에서 민다. 특히 그 어떤 외국인 투수보다도 빅리그 경력이 화려한 류현진은 한화 선발진의 정신적 지주다.
김 씨는 “다른 팀 외국인 투수들도 그렇겠지만, 폰세와 와이스에게 류현진 선수는 정말 ‘우상’이다. 뭐든 류현진 선수가 하자는 대로 하고, 루틴도 다 따라 하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양상문 한화 투수코치는 “선발들끼리 선의의 경쟁이 붙으면서 확실히 시너지가 난다”며 “다들 ‘연승을 내 차례에 끊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선다.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좋은 부담감’을 선발진 전체가 느낀다”고 전했다.

◆숨은 조력자들=한화 마운드는 올해 팀이 승승장구하는 1순위 비결로 꼽힌다. 그러나 양상문 코치는 “투수만 잘한다고 팀이 잘 나가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꼽은 숨은 공신은 포수 최재훈·이재원과 유격수 심우준이다.
실제로 신인 정우주가 흔들리면 포수 최재훈이 마운드로 가서 “맞으면 내가 책임질 테니, 그냥 한가운데로 던져”라고 기운을 북돋운다. 와이스는 지난 11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8이닝 무실점한 뒤 “포수 이재원의 사인에 고개를 저은 게 거의 없었다”고 고마워했다. 최재훈은 이와 관련해 “전력분석팀이 정말 많이 도와준다. 상황에 따라 늘 상세한 피드백을 줘서 투수와 야수 모두 경기 때 힘을 낸다”고 공을 돌렸다.
시즌 직전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한 심우준은 수비와 주루에서 일당백의 존재감을 뽐낸다. 양 코치는 “심우준이 (웬만한 타구는) 다 더블플레이로 만들어냈다”며 “위기 상황에서 흐름을 끊어주니, 투수도 호흡이 돌아오고 여유가 생긴다. 수비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부상 청정지역=한화는 선수층이 그리 두껍지 않다. 그런데도 올 시즌 팀 운영이 원활한 건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가 거의 없어서다. 시즌 개막 전 구상한 선발투수 로테이션에서 중도 부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팀은 한화가 유일하다.
한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큰 부상이 아니면 무조건 경기에 나간다”는 의지로 뛴다. 이지풍 한화 트레이닝 코치는 “선수가 ‘아프다’고 하면 ‘지금 이 경기가 한국시리즈 7차전이라도 빠지겠냐’고 묻는다. 그러면 다들 ‘뛴다’고 한다”며 “그럴 때 대타든, 지명타자든, 하루 이틀 휴식이든, 그 상태에 맞는 대안을 찾아주는 게 내 역할이다. 감독님이 늘 그런 부분에서 소통을 잘 해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