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예측해볼 법한 일들이 퍽 많다. 언젠간 빨래를 대신 개어줄 로봇이 나올 테고, 우주여행도 가능해질 것이며, 불로장생의 꿈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 다만 그 꿈이 달성되는 시기와 주체가 불분명할 뿐이다. 언젠간 벌어질 일이지만, 그걸 직접 생애 안에 이뤄보겠다고 달려드는 이와 그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아서다. 그래선지 엑스프라이즈(XPrize) 재단처럼,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을 모으고 지원해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더 빠르게 만들어보려는 주체들에게 유독 관심이 간다.
중국 헤지펀드 회사 산하 연구소에서 만든 딥시크(DeepSeek-R1) 모델의 등장은 사실 너무나 예측 가능했다. 인공지능(AI) 모델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오르는 문제는 누구든 풀고 싶어 했다. 그러니 언젠가는 더 낮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는 모델이 나올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개인정보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알려진 환경에서, 똑똑한 연구자들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파고들 수 있는 배경이라면,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는 전망도 충분히 나와 있었다. 실제로 사람을 인식하고 감정을 추출하는 등 이미지 분야 기술은 이미 2010년대 말에 중국 연구진 및 기업들의 결과물이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한 바 있다.
벌어질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충격파를 주는 건 아니다. 쏘아올린 로켓의 궤도를 바꿀 정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이벤트들이야말로 시장과 대중에게 충격을 준다. 챗GPT가 처음 나왔을 때가 그랬다. 그전까지 GPT-3, BERT 같은 언어모델들은 꾸준히 연구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이를 변용한 전문 영역의 버티컬 모델들도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일종의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대중이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챗GPT가 제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대화모델을 만들까”라는 문제를 직접 마주했다는 것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피드백을 학습 과정에 치밀하게 밀어넣는 방법론을 모델링에 반영했고, 대중에 친숙한 채팅 인터페이스를 공개해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이, 더 빠르게 데이터를 쌓았다. 오픈AI 관계자들이 회고하기를, 공개 전날까지도 “이건 아직 내보낼 정도는 아니지만, 빠르게 대중의 반응을 보자!”라는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대중의 사용 사례를 빠르게 모아 실시간에 가깝게 모델을 업데이트해 상호작용이 더 잘되는 모델을 만드는 분위기가 언어모델 회사와 생태계 전반에 급격히 퍼졌다.
딥시크가 쏘아올린 ‘이제는 가성비 시대’라는 패러다임은, 돈 많은 나라의 막대한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나 AI 모델을 만들어 생태계를 다 차지할 거라는 상심과, 적당히 성능 좋은 경량화 모델을 찾고자 하는 수요, 전력에 대한 걱정같이 지표면 아래에서 꿈틀대던 욕망들에 한 잔의 시원한 사이다를 선사한 것이었다고 본다. 이미 많은 모델의 성능은 일반 사용자들이 뭐가 더 좋은지 세밀하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인식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부터는 이 모델을 어떻게 써먹느냐로 승부를 보는 세상이다. 그 다리를 놓아줄 ‘가성비템’의 등장과 임팩트가 한편으로 반갑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