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1988년 봄, 주한 미국 관세관(Customs Attache)이 태국으로부터 한국을 경유지로 하는 대량의 헤로인 밀수 정보를 제공하고 한·미 관세청간 국제 공조 수사를 요청해 왔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약류 단속의 40%가 미국세관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
당시 헤로인의 국제적 동향을 보면, 헤로인, 몰핀의 원료인 양귀비 식물은 미얀마 북동부, 태국 북서부, 라오스 북부에 걸쳐 있다.
또한 루악 강과 메콩 강이 합류하는 광활한 산악 지역지점인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와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이란 국경 부근의 황금의 초승달 지대 (Golden Crescent)에서 전세계 양귀비의 80% 정도가 생산되고 있었고, 이 지역은 또한 양귀비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 아편을 모르핀, 헤로인으로 만드는 세계 최대의 마약·각성제 밀조 지대였다.
유통경로를 보면, 황금의 삼각지대에서 생산해 태국등 동남아를 거쳐 미국으로 밀수·유통되거나 황금의 초생달 지역에서 제조하여 이란과 파키스탄을 경유하여 중ㆍ서유럽 지역, 미국으로 유통되는 경로였다.
이중 미국에서 소비되는 헤로인에 대한 전통적인 유럽 공급 경로는 프랑스 커넥션이라고 하였다.
각국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국경 변두리지역에 쿤사(Khun Sa)와 같은 사립(私立) 군사조직이 신병, 식량, 돈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강압하고 농부들을 착취하여 아편을 생산하게 했다.
이어 이를 수확해 국제적 밀수조직에 넘기고, 엄청난 돈은 국제적 기업의 자금통로를 이용한 자금세탁등을 통해 회수하고, 밀수된 헤로인등은 엄청난 마진을 챙기며 미국내 마약 밀매·유통 조직과 연결되어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폐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남아시아에서 헤로인 생산이 증가했고, 삼합회등 기존의 조직범죄 인프라가 마약밀수쪽으로 움직였고, 홍콩은 곧 동남아시아 헤로인의 중요한 환승 지점이 되었고, 국제 판매 수익을 재투자할 수 있는 편리한 자금 세탁 센터가 되는 등 문제가 많아졌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헤로인등 마약 밀수를 단속하기 위하여 자국의 관세청/마약단속청 수사관 약 40여명을 태국 방콕, 치앙마이 등에 주재시켜 놓고 마약 정보를 수집/단속하고 있었는데 사회에 위험한 마약이 자국에 도착하기 전에 봉쇄하려는 의도로 미리 마약 밀수 근원지에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국력과 능력이 당시 개도국 세관의 밀수 담당관으로선 부러울 뿐이었다.
주한 미 관세관 및 태국 방콕 주재 미 관세관과 정보 교환하고 공동 수사 하던 중에 홍콩 주재 미 관세관도 참여하게 되었다.
밀수조직이 홍콩 현지인 3명을 운반책으로 고용하여 그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환적작업을 할 거라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검찰에 보고하고 그 수사지휘를 따르며 국제공조 수사를 빈틈없이 하였다. 당시 관세청은 일반물품 밀수만 수사할 수 있었다.
태국 방콕 및 홍콩 주재 미 관세관등과 정보 교환은 그 당시는 이메일도 없고 주로 팩스와 국제전화로 하였는데, 미 관세관들은 보안을 이유로 팩스보다는 국제 전화를 선호하였고, 그 당시 규정상 보안과 비용 때문에 국제 전화를 사용할 때는 일일이 과장님 결재로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홍콩인 운반책이 한국에 도착한 후 그들은 범죄조직이 예약해둔 특급 호텔에 1박하고 쇼핑, 카지노등 일정을 즐기고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우리 수사팀은 그들을 미행하였고 그들이 묵는 부산의 한 호텔 옆방에 잠복하였다. 모 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님을 모시고 도청으로 밀수 지게꾼들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었으나, 내용 파악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눈치 빠른 세관 조사관이 야근시 자주 이용하던 단골 중국식당 주인을 데리고 와서 녹음한 통화 내용을 들려 주니 즉각 그들의 대화 내용이 파악되었다. 수사 지휘중이던 필자도 그제서야 중국어에도 북경어(Mandarin) 와 광동어(Cantonese) 가 있고 서로가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반책들은 배에 실려 있는 화물을 부산항에서 환적하여 다시 미국으로 보내는 것이 임무였다. 선적지가 방콕이나 홍콩이면 미국의 항구에서 미국세관의 정밀 검사를 피하기 어려우니 그 당시 청정국가이던 한국의 부산항에서 선적하여 미국세관의 검사를 회피하려는 전략이었다.
검찰 세관 조사팀은 그 환적 화물을 배에서 압수하고, 선적지를 부산항으로 하여 강관(steel pipe)속에 숨겨 미국으로 보내려던 대량의 헤로인을 적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사건후 한국 관세청은 미국 관세청과 국제적 마약밀수를 방지하는데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고, 마약 밀수 수사에 대한 교육등 협력 방안을 미국 관세청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 관세청에서 세관 수사요원에 대한 마약 수사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왔다.
그리하여 그 해 12월 미국 관세청의 주선으로 미국 마약단속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 교관 요원 4명이 한국 관세청을 방문하여 약 150여명의 우리 세관 수사 요원들에 대한 마약 수사 교육을 이틀간 관세청 강당에서 실시하였다.
미 DEA 교관요원들로부터 헤로인, 필로폰, 코카인 등의 마약 식별교육을 받고, 당시로서는 새로운 많은 마약단속도구들을 소개 받았고, 식별 시약을 제공 받았으며, 마약 수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기법, 법적 제도등을 소개 받았다.
우리 실무진으로서는 그들이 소개하는 수사기법등이 당시의 법, 제도 하에서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들이 많아 새로운 입법조치가 필요하고 입법이 지난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동시통역사 3분이 동시통역으로 하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methamphetamine(필로폰), controlled delivery(통제배달), undercover investigation(위장수사), entrapment(함정수사), 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 등은 생소한 개념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번역어도 없어 통역에 애를 먹고 통역을 해도 우리 조사관들이 이해가 어려워 통역 하지 말고 영어 그대로 사용해 달라고 통역사들에게 부탁하였다.
또한 위와 같은 고도의 마약수사기법을 이용하기 위하여는 마약구입 대금등 특별수사경비가 필요하였던바 정보당국과 예산당국의 마약밀수에 대한 이해와 협조로 수사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특별수사 경비를 확보하였다.
그 후 관세청은 1990년 4월 마약류 전담 단속부서를 신설하고 1990년 8월 1일부터 공항, 항만과 보세구역에서 발생하는 마약류 사범에 대한 수사권을 확보하였다(“사법경찰관리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물론 마약류 최신 검색장비인 ‘이온스캔’등을 주요 세관에 배치하고 있으며 마약탐지견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필 ] 이대복 (사)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 세계관세기구(WCO), 동국대, 외국어대 등에서 자금세탁방지론 강의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 경영학 박사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WCO 사무총장상 수상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 본부세관장
• 2003.~2008. 관세청 감사관, 조사국장, 통관관리국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로펌(Sandler, Travis &Rosenberg, P.A.) 고문
• 1998.~1999. 천안세관장
• 1988.~1989. 구미세관 수출(환급)과장
• 1986.~1988. 관세청 심리기획관실 마약 밀수 담당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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