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이 어지러울 수 있겠다. 생각이 여러 갈래여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은 그만큼 다의(多義)적이다.
①우선 이 후보자.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새 유형의 여성 정치인이 등장했는데 법조인 나경원∙조윤선과 함께 경제학 박사인 그였다. 이전의 한나라당 여성 정치인들은 최고 권력자와 가깝거나 그의 부인과 가까웠다. ‘부인 정치’란 아류에 속했다. 이들에 이르러서야 달라졌다.
5년여 뒤 총선을 앞두고 친박 쪽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공천을 줄 5인을 알렸다. 김무성∙허태열∙유승민∙유정복과 그였다. 정작 박근혜 정부 초기에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강남 3선인 걸 문제 삼았는데 문제 삼는 이들은 영남 다선이었다. 유승민과 정치 행보를 함께한 탓이 컸을 것이다. 어느 순간 그는 윤석열 지지자로 바뀌었다.
30년 정치 부인하며 후보자됐지만
청와대 실장·보좌관까지 층층시하
'보수' '통합' 상징만 산 게 아니길
원내대표·장관을 한 나경원∙조윤선과 달리, 그는 한데에 머물렀다. 그러다 이번에 자신이 비난해온 인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20여 년 정치를 부인해야 했다. 장관직을 떠난 후엔 어느 진영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존재가 될 터이다. 그런데도 그는 월경(越境)을 택했다. ‘과거의 기록을 다 지우고’ 건너고야 마는 욕망과 의지가 놀랍다. 한 미국인이 이런 권력에의 돌진을 ‘소용돌이’에 비유했다. “소용돌이 폭풍이 일어나면 그 거대한 흡입력은 모래알의 정치 개체들을 빨아들여 어떤 이성적인 성찰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②통합. 청와대의 설명이다. 상대방도 그리 느껴야 통합될 텐데 정반대다. 국민의힘이 ‘밴댕이’이긴 하나 불쾌할 만한 요소도 충분했다. 이전 보수 인사들의 이동엔 맥락이 있었고 징후도 있었다. 이번엔 돌연했다.

사실 이 대통령이 이럴 수 있는 건 자신감이다. 지지율은 높고 국민의힘은 지리멸렬하다. 인사청문회도 하나마나 하다. 내각엔 ‘이렇게나 의혹이 많은데도 후보자 꼬리표를 뗀 사람들’이 많다. 월경했는데 낙마하는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이 낮다는 의미다. 국민의힘이 나아질 생각은 안 하고 ‘당성(黨性)’ 운운하며 더 보잘것없어지니 대통령으로선 더 유혹을 받을 거다. 물론 ‘통합’ 외피를 두르겠지만 정략이자 공략이다.
③여성. 현 내각은 유사 의원내각제라 할 만큼 전현직 의원이 많다. 19명 중 7명이 현직, 1명이 전직이다. 이 후보자의 가세로 한 명 더 늘었다. 공교롭게 현직은 모두 민주당 남성 의원이다. 강선우 의원 낙마 여파라곤 하지만 민주당 여성 의원(166명 중 29명)이 전무한 게 기이하다. 왜일까. 여성 의원들은 어찌 볼까.
④그리고 기획예산처. 이 대통령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언정 격렬한 토론을 통해 차이와 견해의 접점을 만들어가고 그 과정 자체가 새로운 정책과 합리적 정책을 만들어가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된다면야 좋겠다. 현실은 달리 말한다. 문재인 정부 때 정통 예산통이면서 재정을 쓸 땐 써야한다던 김동연 경제부총리조차 최저임금, 법인세·소득세율 인상 등 몇몇 대목에서 청와대·여당의 진영 논리와는 결이 다른 얘기를 했다가 ‘패싱’ 논란이 일었다. 특히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이 깊었다. 박근혜 정부 때엔 실세로 불린 진영 복지부 장관이 “한계와 무력감을 느꼈다”며 사임한 일도 있다. 복지부 차관 출신 수석이 장관을 제치고 복지부 실무자들을 청와대로 불렀다는 뒷말이 나왔다.
이번 조건은 ‘김동연+진영’ 그 이상이다. 청와대의 김용범 정책실장이 경제부총리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 그립감을 보이고 이례적으로 수석급 재정기획보좌관(류덕현)이 있다. 계량경제학자인 이 후보자와 달리 류 보좌관은 재정전문가다. 과연 이 후보자가 ‘다른 생각’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이 ‘보수 여성 정치인’이란 상징만 산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