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이가 삶의 마지막까지 고귀하게 살다 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윤정원(44)씨는 3년 전 여름, 아들 승준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생후 5개월이던 이승준군이 자던 중 호흡에 문제가 생겨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이후 뇌사 판정을 받기까지의 48시간. 윤씨는 중환자실 앞에 붙어있는 ‘뇌사자는 장기 기증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고민하는 시간 동안 너무 괴로웠지만, 우리 아이가 다른 생명을 살릴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니 기증 결정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승준군은 간과 신장을 기증하며 또 다른 두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윤씨는 승준군을 “이 땅에 잠깐 와서 우리에게 큰 기쁨과 생명을 주고 간 천사”로 기억한다며 “이식을 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 책임감을 갖고 잘 살아갈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서는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제12회 서울시 장기기증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장기 기증인 유가족 60명과 생존 시 장기기증인 40명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 후에는 시민들에게 장기기증의 가치를 전하기 위한 8개의 ‘생명 나눔’ 체험 부스가 운영됐다.

이날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에게는 크리스털패에 기증인의 사진이 새겨진 ‘생명의 별’이 전달됐다. 2012년 9월, 장기기증으로 7명에게 생명을 나눈 김휘중씨의 유가족도 무대 위에 올랐다. 당시 27살이던 김씨는 임용고시 합격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다. 대학생 시절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서약했던 김씨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이 진행됐다. 누나 김은경(41)씨는 “어딘가에서 휘중이의 심장이 뛰고 눈, 장기가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고 있다”며 “동생이 주고 간 생명으로 삶을 이어가는 분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식인도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했다. 1993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신장을 이식받은 팽선강(49)씨는 17살부터 만성 신부전 판정을 받고 투석 치료를 시작했다. 투석 10개월 만에 신장을 이식받았지만 5년 만에 거부 반응이 왔다고 한다. 인공 신장에 의지하며 살아가던 팽씨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삶의 비전이 사치처럼 느껴졌고, 해외여행은 먼 나라 얘기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회상했다. 팽씨는 두 번째 신장 이식 이후 “절망으로 가득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희망을 꿈꾸게 됐다”며 “미약하게나마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신장을 잘 관리하며 살아가겠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장기이식 대기자 느는데 기증인은 감소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장기기증인은 3931명으로 전년 대비 11.3% 감소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또한 7만563명으로 같은 기간 동안 약 15% 줄었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5만4000여명으로 5.6% 증가했다. 하루 평균 8.3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고 있다.
이날 행사와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지민(26)씨는 “기증자분의 이야길 들으며 장기기증은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며 “올해 7월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는데, 취업도 인간관계도 어려워 우울하던 시점에 스스로 더 잘 살아갈 힘을 얻는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