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탈출에 “사우나서 보자”…정보사 접선지에 숨은 비밀 [남북 스파이전쟁 탐구 2부-④]

2024-10-22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

〈제2부-2〉북한에 납치됐던 정보사 블랙요원의 증언④

1998년 10월 22일 목요일 중국 선양(瀋陽). 북한에 납치된 국군정보사 소속 블랙 요원 정구왕 중령이 평양을 ‘탈출’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정구왕은 자신을 호송한 북한 보위부 반탐(反探)과장과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서탑(西塔) 지역의 한 호텔 앞에 내렸다.

서울 정보사 본부로 전화를 걸었다. 현지에서 접촉할 사람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호텔 부근 한국식 사우나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우나 카운터에서 30대 남성이 기다렸다.

남성은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보좌관 L의 조선족 협조자였다. 그는 정구왕에게 “다른 옷을 준비해 주겠다. 북한에서 입고 나온 옷을 전부 벗어 달라”고 했다. 옷이나 몸에 추적 장치가 달렸을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낌새였다.

저녁 무렵 선양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탔다. 역에는 우리 쪽 요원 한 명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의 호송을 받으며 기차 침대칸을 타고 베이징까지 약 630㎞를 이동했다.

국방무관 보좌관 L은 정보사 본부 주무과장의 지시를 받고 정구왕 귀환 작전을 지휘했다. L은 정보사에서 주요 보직을 거친 베테랑이었다. 북한 반탐과장이 L을 지칭하며 “아주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표현한 말이 떠올랐다. 대북 공작 활동을 하면서 치고 빠지는 기민한 행동에다 신분까지 완벽히 감추는 능력이 탁월했던 탓에 북한 반탐조직의 경계 대상이었던 듯했다.

베이징역에서 정보사 동료 요원이 정구왕을 맞았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료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거실에다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자기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는 소리에 갑자기 서글퍼졌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가슴은 아팠다.

이튿날인 23일 금요일 오전, 아내와 8개월 만에 첫 전화통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아내의 절절한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 왔다. 대화는 간결했다. 그동안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긴 이야기를 나눌 게 없었다. 재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위장 탈출이 실현되기 전까지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여생을 북한에 묶여 지낼지 모른다고 각오했다.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고자 했다. 아내가 자신을 잊고 새 삶을 찾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두 딸과 아들은 자신의 형제들이 하나씩 맡아 키워주길 바랐다. 큰아이가 어른이 되면 자식들이 함께 모여 살기를 소망했다.

베이징 호텔에서 혼자 지낼 때는 객실 문을 의자와 탁자로 막고 잘 정도로 불안했다. 무관 보좌관 L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보사 본부에 긴히 보고할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정구왕은 메모식 필담(筆談)으로 첫 귀환 보고를 했다. 민감하고 중요한 내용이라 인편으로 전달했다.

북한에 역용(逆用)돼 탈출한 것으로 연출됐다.

북한이 정구왕을 납치한 뒤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려고 역용공작을 꾸미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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