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를 통과하는 일
박소령 지음
북스톤
제목에 '성공'을 내건 책은 많아도 '실패'를 앞세운 책은 드물다. 남의 성공담을 읽는다고 나까지 덩달아 성공하는 건 아닐 테지만, 기왕이면 '실패'보다 '성공'에 이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여기는 듯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제목부터 이채롭다. 무엇보다 남의 실패담이 아니라 온전히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란 점이 눈길을 끈다. 2015년 '퍼블리'라는 콘텐트 스타트업을 창업한 지은이가 지난해 회사를 매각하고 퇴사하기까지 10년의 경험을 담았다.
독자에 따라 이 책은 여러 가지로 읽힐 것 같다.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를 포함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통장 잔고가 바닥난 순간, 목표한 구독자 수를 달성한 순간을 비롯해 지은이의 생생한 경험이 결코 남의 일로만 다가오지 않을 터. 투자 유치 등을 비롯해 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국외자가 영 따라가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특히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복기는 '전시CEO' '평시CEO'의 구분을 비롯해 기업이나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이들이 겪어봤을 여러 고민과도 중첩된다. 책은 펀드레이징은 물론 그 이상으로 살 떨리는 경험이었을 레이오프, 공동창업자·동업자와의 관계, 주주와의 관계, 매각과 퇴사의 과정 등을 고루 각 장의 초점으로 삼는다. 읽다 보면 실제에 바탕한 스타트업 드라마의 장면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는 다양한 인용이 적재적소로 등장한다. 이름난 창업가들의 자전적 책이나 경영서는 물론 소설, 영화, TV시리즈, 만화 등을 아우른다. 다독가일뿐 아니라 "평생 읽고 보고 들었던" 콘텐트들로 그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지은이의 면모가 드러난다. 텍스트 기반의 '콘텐트' 서비스로 시작한 회사가 이후 '커리어' 서비스 회사로 전환을 꾀한 배경과 과정, 때마침 새로운 펀드레이징에 성공한 이후에 벌어진 기대와는 사뭇 다른 상황 역시 책에 드러난다. 제6장 '자원배분의 문제'가 바로 이 얘기다.
리드 호프먼은 창업을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비행기를 조립해 나아가는 것"에 비유했다고 한다. 10년의 경험을 토대로 지은이는 "결국 창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매일매일 답을 내야 하는 일"이라고 책에 썼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유니콘 기업을 키워낸 것도, 이른바 성공적인 엑시트를 한 것도 아니지만, 국외자로서 이 책의 이야기를 그저 '실패'로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잘못된 의사결정'의 지점을 포함해, '성공' '실패' 같은 두 글자로만 축약할 수 없는 일의 경험을 진솔하게 복기한 드문 책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