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그대로의 자연
엔리크 살라 지음
양병찬 옮김
열린책들
이 책은 짧고 간결한 편이면서도 많은 것을 담았다. 지은이가 말하듯 생태학 속성코스로도 뛰어나다. 담담히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메세지는 굳건하다. 자연보호. 이제는 식상한 느낌마저 주는 주장이니, 이 책이 메세지만 소리 높여 외쳤더라면 구태여 소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을 왜, 어떻게 보호하고 구체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근거와 희망을 섞어 겸손하게 설득한다. 이미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많지만 그런 지식과 정보가 엮여 독자에게 체계적인 시야를 만들어낸다.

지은이 엔리크 살라는 스페인에서 해양학자로 성장해서, 유서 깊은 해양학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연구가 치료는 손 놓고 사망경과만 자세히 기록하는 의사 같다고 깨닫고는 대학을 떠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로 옮겼다. 그곳에서 해양 탐사가로 활동하면서 청정바다 프로젝트를 창설해 현재까지 690만km²의 바다를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전 세계 바다의 1/60을 약간 상회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묘한 조직이다. 비영리 단체이면서도 합작회사를 통해 활발한 영리활동을 전개한다. 19세기 말 제국주의적 탐구심으로 뭉친 신사들의 클럽으로 출발한 이래 유력자 및 유명인사들 간의 교류와 인맥을 중시해왔다. 동시에 지식의 대중적 확산에 주력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의 노란 사각 테두리는 전 세계적 아이콘이 되었다.
이 책은 사실상 저자 서문인 1장 이후 아홉 장에서 생태학적 관점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점층되고, 마지막 세 장에서 주장과 대안을 제시한다. 세계 각지를 무대로 벌어진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각 장을 넘기다 보면 공부한다는 느낌 없이 특정 개념이 왜 나왔는지, 어디서 들어본 실험과 관찰의 의미가 무엇인지 시나브로 알게 된다. 글쓴이 못지않게 편집자들의 솜씨가 빛을 발한 듯싶다.

고백하자면, 생물 다양성을 한 장소에 있는 종의 수를 뜻하는 종 풍부성과 종별 개체수나 생체질량도 감안하는 종 다양성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처음 알았다. 한 생태계가 복잡할수록 안정적이고 단순할수록 파멸적 상황이 잘 닥친다는 점을 이미 1930년대 소련의 한 실험실 내에서 진행된 실험이 보여주었다는 점도, 최근 동남아에서 단일작물 경작보다 주의 깊게 진행된 혼합경작이 소출과 순수익을 더 거둔 실험 결과가 여럿 나왔다는 이야기도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픈,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살라에 따르면 인간 이전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포경 활동이 먹이사슬의 연쇄를 통해 다른 해역의 생태적 재앙을 불러 일으키듯 인간의 활동과 자연을 완벽하게 격리하는 것도 어렵다. 자연을 인간과 격리된 자연으로 이해한다면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불가능하다. 책의 원제(The Nature of Nature)를 직역하면 '자연의 본성'. 이를 질문으로 이해한다면 답은 ‘여러 가지 층위에서 서로 연결된 것’ 정도일 터이다.
그렇다면 살라가 만든 보호수역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이 개입이 억제된 상태에서 생태계 천이가 일어나는 영역인데, 인접한 수역에서 어업 생산이 늘어나는 일도 벌어진다.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보호수역이 더 이익이라고 각국 고위 당국자들을 설득해낸 대목은 통쾌하다. 반면 그런 설득이 개발도상국의 유력자를 대상으로 했던 점은 약간 불편하다. '자연보호'가 문명과 인류의 파국을 막는 일임은 분명해졌지만, 그 부담과 과실이 누구에게 가느냐는 문제들 또한 뚜렷해진다. 살라는 자연보호가 유력자보다는 대중의 창안과 동의가 주도하는 시대로 넘어가는데 이 책이 창문 노릇을 하길 바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