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측근들 낙마·정적 포용 분위기
반중 매체들 ‘권력 이양’ 쏟아내
성급한 단정, 진실 접근 어렵게 해
하반기 ‘4중전회’서 단초 볼 수도
베이징은 평온하다. 중국 관영매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기고문을 비중 있게 다뤘고, 도시 곳곳의 전광판에는 당 중앙의 노선을 강조하는 선전 문구가 어김없이 걸려 있다. 외부에서 말하는 불안의 그림자는 적어도 이곳의 일상 어디에도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화권과 주변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또다시 ‘시진핑 실각설’이 번지고 있다. 반중 성향의 해외 매체들이 틈날 때마다 시 주석의 권력 이양 가능성을 언급하며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한국·일본 등 언론과 개인 SNS 계정들이 전하며 루머는 빠르게 소비되고 있다. 중국 당국의 공식 확인은 물론 반박도 없었다. 중국에서 지도부의 정치적 동향은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며, 내부 정보를 얻기 어려운 구조는 소문에 더욱 생명력을 부여하는 듯하다.

실각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시 주석 최측근 인사들의 낙마 등이 주로 배경으로 거론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전·현직 국방부장인 웨이펑허와 리상푸, 외교부장 친강, 군 정치공작을 총괄하던 먀오화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 주임 등이 실각했다. 모두 시 주석이 직접 발탁한 핵심 인물들이다. 또 군 서열 3위였던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3개월 넘게 자취를 감췄는데, 그의 빈자리를 군 서열 2위인 장유샤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 계열 인사가 메우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은 바 있다.
일련의 분위기 변화도 소문이 퍼진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천윈 전 국무원 부총리 탄생 120주년 좌담회에 시 주석은 공산당 원로의 후손들과 함께 한때 라이벌이었다 실각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의 동생까지 불러 모았다. 특히 보시라이 일가를 공식 석상에 초청한 것은 과거 정적을 포용하려는 제스처로 읽혔다.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그는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아버지의 날’을 기념하는 글을 올리며 “13년간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제는 그 품 안에 머무를 자신이 생겼다”고 적었다.
다만 실각설은 현재로서는 실체가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 주석은 올해 4월 동남아 3개국을 순방했고, 5월에는 러시아, 6월에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국내 정치가 위기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정이다. 고위 군 간부 제거는 시 주석의 전략적 행동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시 주석은 최근 발간된 공산당 이론지 ‘추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15차 5개년 계획(2025∼2030년 국가 중장기 계획)의 방향을 언급했다. 그는 “다음 5개년 계획 목표를 사전에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직접 장기 계획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집권 4기’를 시사한 행보로 평가된다.
하반기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공산당 20기 4차 전체회의(4중전회)는 권력 구도 변화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이 회의는 최고 지도자가 직을 내려놓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시 주석이 총서기·국가주석·중앙군사위 주석이라는 3대 직책을 유지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4중전회에서 군부 재편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누가 사라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남았느냐는 점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을 둘러싼 풍경은 점점 더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더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반복되는 루머를 넘어 하나의 구조적 물음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읽어내는 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실각설’을 과도하게 확대 재생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익명의 ‘중국 내부자’라는 이름 아래 쏟아지는 자의적 해석이 조회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부재는 때때로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복잡하고 불투명한 중국 정치 구조를 성급한 단정이나 선동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결국 사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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