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지식재산처 승격 계획 환영, 특허법원도 개편해야

2025-09-01

연구개발 결과를 보호하는 지식재산 정책

지난달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소식은 거의 놀라움이었다. 내년 국가 연구개발비를 전년 대비 20% 증가시켜 35조5000억원으로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해 연구 성과물인 특허의 사업화와 기술거래를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사적으로도 보면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나라는 흥했고, 과학기술을 천시하는 나라는 대개 망했다”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얼마만큼 갖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연구개발비 증액과 지식재산처 출범 계획 발표는 잘한 일

연구개발에 인간 창의성 발휘하려면 특허와 지식재산 보호가 필수

새로 출범할 지식재산처에 소프트웨어 저작권 등 포함한 권한 주고

특허법원도 지식재산법원으로 바꿔 민·형사 재판 모두 담당하게 해야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지 모르겠다. 역사 속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는 그 당시 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들이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됐던 것도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일으켰기 때문이고, 독일이 세계를 상대로 두 번씩이나 전쟁을 벌였던 뒷심도 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힘도 과학기술에서 나온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을 열심히 견제하는 이유도 결국 중국의 과학기술 급성장 때문이다.

연구개발 촉진하는 특허제도

이 정도는 역사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에 지식재산까지 연결해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식재산은 특허와 상표·저작권·영업비밀 등 무형의 자산을 가리킨다. 그래서 지식재산은 연구개발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연구개발을 열심히 해도 이 결과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모든 제품이 포장을 잘해야 값이 나가고 빛이 나는 이치와 같다. 그리고 연구 결과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면 연구개발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 인간 본능이다. 그래서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인간 본능을 자극하는 제도가 특허와 지식재산 보호제도다. 이처럼 연구개발과 지식재산 사이의 다소 복잡한 이치를 대통령이 국가 정책에 제시한 것이다. 이처럼 연구개발과 지식재산을 함께 엮어서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영국이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배경에도 사실 알고 보면 특허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허는 개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일정 기간 독점적인 이익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영국은 1624년에 정식으로 특허제도를 도입했다. 영국 사람들이 신기술 개발에 의욕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또한 창의적이고 모험심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산업혁명의 효시라고 말하는 증기기관 발명도 특허제도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할 당시에 비슷하게 시도되는 기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와트가 1769년에 가장 먼저 특허를 출원했고, 그것이 인정돼 막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할지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영국에는 다양한 연구개발이 이뤄졌고, 결국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됐다.

특허로 싸우는 미·중 패권 경쟁

이러한 국가 발전의 기본 원리를 제대로 적용한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은 특허권을 헌법에 명시한 최초의 나라다. 1787년에 미국 헌법을 기초한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 벤저민 프랭클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랭클린은 사업가이면서 발명가였다. 비 오는 날에 연을 날려서 번개가 전기를 방전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알아낸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러한 과학적 발견에 근거해 번개를 예방하기 위해서 피뢰침을 발명하기도 했다.

특허권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지금도 특허에 관한 사무는 연방정부에서 관할하고, 소송도 연방법원에서 하고 있다. 이처럼 특허를 존중하는 미국에서 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현재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도 사실 특허를 무기로 싸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중국의 BOE가 삼성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침해했다고 판정하고, 미국에 판매를 금지한 것도 특허를 매개로 한 싸움이다.

지식재산처 개편의 방향

인공지능(AI) 강국 건설을 주요 국정과제로 정한 정부가 연구개발비 증액과 동시에 지식재산 보호를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매우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선진국이 이렇게 하고 있고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이번 조직개편에 몇 가지 참고할 사항이 있다.

무엇보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할 때 지식재산의 범위에 맞도록 업무 영역을 정해줘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식재산에는 특허 외에도 상표·저작권(문화콘텐트와 소프트웨어)·영업비밀 등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특허와 상표·영업비밀은 특허청이 관할하고, 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 기술 탈취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업무가 분산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두고 관련 부처와 협의·조정하게 하고 있다.

이번에 지식재산처를 신설하려면 지식재산 관련 업무를 몰아서 관장하게 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직접적인 결과물인 소프트웨어는 특허와 함께 지식재산처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혹시 문화콘텐트 관련 저작권을 문체부에서 계속 관장해야 한다면 소프트웨어 권리를 저작권에서 분리해 지식재산처에서 관리하게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만약에 이번 조직개편에서 지식재산처의 업무가 특허청의 업무를 단순 승계하는 정도가 된다면 조직개편의 효과가 많이 감소할 것이다. 지식재산처가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통합·조정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지식재산 보호 업무가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그것이 안 된다면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존속시켜서 조정 업무를 계속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허법원 관할 범위도 조정해야

이처럼 지식재산처가 출범하게 되면 그에 따라서 법원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현재 특허법원이란 명칭이 자연스럽게 지식재산법원으로 변경돼야 할 것이다. 이것도 역시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에게 영향을 줬던 일본도 이미 오래전에 특허법원이란 명칭을 지식재산고등법원으로 바꿨다.

특허법원의 관할 범위도 조정돼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특허법원은 특허와 상표에 관한 민사 소송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지식재산에는 저작권(특히 소프트웨어)과 영업비밀이 포함된다.

또한 대부분의 특허 소송에서는 영업비밀·산업기술 보호 관련 사건이 연관돼 있고 범죄 여부를 묻는 형사 기소와 집행정지 가처분 등이 제기된다. 이런 것들이 제기되면 특허법원은 심리를 중단하고 관련 법원의 판결을 기다린다. 특허법원이 소프트웨어 저작권과 영업비밀·산업기술 형사 재판도 다룰 수 있어야 효율적이다.

특허심사 품질 개선도 시급

아울러 특허심사의 품질을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허 출원과 등록은 세계 5위 안에 있지만, 특허 보호와 실용화는 30위권 밖에 있다. 이는 부실 특허가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특허 무효율이 44.4%인데 비해 미국은 31.3%, 일본은 11.5%다(2023년 기준).

이 현상의 첫 번째 원인은 부실한 특허 심사라고 할 수 있다. 심사 단계에서 제대로 평가하면 이런 일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면 왜 부실 심사가 계속되는가? 우리나라 특허 심사관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특허 한 건당 투입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 심사관은 한 건 심사에 29.9시간, 일본은 15.7시간을 투입한 데 비해 한국은 12.1시간을 쓴다(2023년 기준).

특허심사관의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는 공무원 증원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특허청은 최근에 슬기로운 실험을 했다. 첨단기업의 은퇴 기술자 100여 명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심사에 투입한 것이다.

결과는 크게 만족이라고 한다. 현장의 최고 전문성으로 심사하니 심사 품질이 올라갔다. 그냥 놔두면 외국에 취업해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는 분들인데 국내에서 일하게 해 기술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또 한 가지 장점은 임시 계약직이라 공무원 정원과 무관하게 채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허 출원인으로부터 심사료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월급을 버는 입장이다. 이 정도면 일거양득을 넘어 일거삼득이라고 할 만하다.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제시된 과학기술 육성과 지식재산 보호 정책이 무척 반갑다. 우리도 비로소 진짜 기술 강국의 설계가 시작될 것 같다는 희망이 솟아오른다.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제도가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광형 KAIST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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