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측이 오히려 기술 유출을 걱정합니다. 한국 과학자들이 그들의 기술을 카피(복제)할까 봐 경계하는 거지요.”
베이징 취재 길에 만난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의 김준연 소장은 한·중 과학기술 교류를 이렇게 요약한다. 중국 과학자들은 빨리 배우고 습득하는 한국 과학자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교류를 꺼린다는 지적이다.
거꾸로 아닌가? 우리는 한국 기술의 중국 유출을 걱정한다. 기업의 중국 투자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 중 하나도 기술 유출이다. 그런데 반대라니, 현장 목소리에 놀랄 수밖에 없다.
수교 33년, 양국 협력은 여러 면에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수교 직후 반짝했던 과학기술 연구 교류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줄었다. 중국은 미국·유럽 등 과학 선진국과의 교류에만 관심을 둘 뿐, 한국은 외면했다. 중국의 과학기술 교류 국가 순위(2025년 예산 기준)에서 한국은 9번째. 이집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최근 반전의 흐름이 일고 있다. 미·중 과학기술 교류가 끊기다시피 하면서 그들이 한국 연구기관(대학)에 손을 내밀고 있다. 취재에 동행한 KAIST 관계자는 “갑자기 협력하자고 달려드는 중국 대학의 제안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라고 말한다.
김 소장은 ‘무작정 반길 게 아니라, 보다 냉철하게 한·중 과기 협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참에 양국 과학기술 협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존에는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한 중국 시장 진출형 협력이 많았다. ‘우리 기술을 어떻게 중국에서 상품화할 것인가’가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이 모델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
앞으로는 ‘인류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술을 함께 연구하자’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후·에너지·신소재 등 분야를 시작으로 협력 공간을 차츰 넓혀가야 한다. 아직 초기 개발 단계에 있는 미래 기술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개발 리스크가 높다. 함께 ‘위험을 나누자’고 접근하면 쉽게 양측 뜻을 모을 수 있다. 그게 서로 갖고 있는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중국의 산업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 우리를 추월했거나, 경쟁 중이다. 그럴수록 협력을 더 늘려야 한다. 중국 기술의 강점을 파악하고, 우리 기술의 비교 우위를 발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협력이 이집트와 같은 수준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다. 양국 과기 협력의 상생 모델을 고민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