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무어의 법칙처럼 ‘무한 성장 궤도’를 그릴 것이라는 호언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범용 인공지능)가 임박했다는 선언도 과장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GPT-5 출시 후 쏟아진 수많은 부정적 평가는 AI 기술이 기대와 실망의 쳇바퀴 속으로 휩쓸려가는 징후라 할 수 있다.
2020년 1월, 오픈AI 연구팀이 발표했던 ‘신경언어모델의 스케일링 법칙’이라는 논문은 한때 AI 산업의 복음서였다. 모델을 크게 만들고 더 많은 데이터로 훈련시킬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성능이 향상된다는 논리였다. J커브를 그리며 치솟는 벤치마크 그래프는 AGI라는 꿈을 현실 세계로 끌어내렸다. 2023년 GPT-4, 2024년 GPT-4o로 이어지는 AI 모델의 성능 향상 속도는 따라가기조차 버거울 만큼 숨을 막히게 했다. 챗GPT 사용자 폭증을 견인한 이른바 ‘지브리 열풍’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하지만 이 법칙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아니 붕괴 조짐을 보인다. GPT-4 이후 2년 반 만에 공개된 차세대 모델 GPT-5는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한참 역부족이었다. 코드명 오리온으로 불려온 이 모델의 성능 향상 폭은 GPT-3에서 GPT-4로의 도약에 비해 현저히 작았다. 일부 사용자들은 “유료 사용자로서도 최악의 쓰레기”라며 실망을 토로했다. 오픈AI의 기술 리더십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큰 폭으로 하락 중이다. 기술 커뮤니티에선 구버전을 되돌려 달라는 아우성이 그치지 않고 있고 GPT-5의 오류를 잡아내는 놀이까지 유행하고 있다. 수조원이 투입된 이 스케일링 전략이 본질적 문제 해결엔 실패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한쪽에선 AI 거품론도 터져나온다. 개리 마커스와 에드 지트론 같은 회의론자들은 AI 시장을 500억~1000억달러 규모로 전망하고 있다. 매번 강조되던 1조달러 규모는 거품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전산언어학자 에밀리 벤더는 “이 기술의 영향을 받는 정도는 경영진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AI 기술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과장 광고에 속아 업무 환경을 이 기술에 맞춰 재편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와중에 AI 기업들 주식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 4조4000억달러로 세계 최고가 기업이 됐다.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는 기업공개 첫날 250%나 급등했다. 1995년 넷스케이프를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이제 사람들은 ‘AGI’라는 용어가 대중을 현혹하는 마케팅 언어였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샘 올트먼의 발언에 거품이 한가득이라는 사실도 깨닫고 있다. 천문학적 단위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오버액션’이라는 점도 이해하는 중이다. 지금 AI의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기술의 진보가 항상 직선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어의 법칙이 깨진 것처럼 AI 스케일링 법칙도 유효 기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혁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적 기대치를 설정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