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 동쪽인 영동(永東)을 인구 60만의 신시가지로 만들자는 구상은 1960년대 말에 나왔다.
허허벌판에 폭 50m의 강남대로, 테헤란로 등이 무모하게 계획되었지만, 70년대 초까지 서울 인구의 3/4은 강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인프라가 미약했던 강남으로 이사할 이유가 없었다. 미분양 아파트에 공무원들을 이주시키고 강북 택지개발을 금했으며 법원, 검찰청까지 강남으로 이주시켰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70년대 중반부터 강북의 명문고들이 강남에 이주하고 8학군을 형성하면서 강남이주에 가속이 붙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믿는 수만 명의 강북 맹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시제도와 집값 안정을 연계시켰다고 화제된 한은 보고서를 읽어봤다. ‘지역별 비례선발’ 제안이 나왔다. 소득수준보다도 거주지역이 입시에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강남 사교육이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을 심화시키고 있으니 거주지역 효과를 줄이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한은의 ‘바램’은 입시제도 개편이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을 억누를 것이라는 기대로까지 이어졌다. 교육을 통해 70년대 강북 집중을 완화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발상이지만, 당시는 1인당 소득이 지금의 100분의 일에도 못 미쳤던 시절이다. 명문고 이전처럼 입시제도가 집값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는 나이브하다. 지역의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교육변수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과는 다르다. 강남은 우리 사회의 공정을 깨뜨리는 발원지가 되어버렸다. 교육, 의료, 문화 등 최고의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강남 불패는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우리만큼 사는 국가들보다 PIR(연소득대비 집값 비율) 상승이 두드러졌고, 이런 추세를 강남 아파트들이 선도해온 것도 사실이다.
집값 상승의 주요 변수인 금리는 국제적 상황을 따라야겠지만, 양도세, 취득세 등 세제의 끊임없는 개편은 의도와는 달리 ‘똘똘한 한 채’를 유도해왔다. 비서울 거주자가 자기 동네에서는 전세 살고, 안정적 금융자산인 서울 아파트를 장만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8·4대책, 2·4대책 등 지난 몇 년간 발표된 굵직한 공급책이 계속 뒤집혀왔으니 얼마 전 발표한 8·8대책도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기가 쉽지 않다.
한은이 제안한 입시제도 개편 제안은 공정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겠지만, 교육이 집값을 잡을 때는 지났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강남을 이렇게 만들어온 본원을 세밀하게 다시 봐야 할 때이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