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 아닌 ‘깨설공주’? 애니 왕국 디즈니의 오판

2025-03-27

미국에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PC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본래는 ‘인종·성별 등에 있어 차별적인 언행을 삼가는 것’의 의미였는데, 이미 1990년대부터 비판자들에 의해 ‘별걸 다 차별로 몰아가며 표현을 검열하는 것’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PC하다’라고 하면 십중팔구 비꼬는 의미다.

그래서 PC 지지자들은 PC보다 DEI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Diversity(다양성)·Equity(형평성)·Inclusion(포용성)의 약자인 DEI는 성·인종 등의 구조적 불평등을 타개하기 위한 행위나 정책을 의미한다. DEI가 과도하다고 생각하며 빈정거리는 사람들은 이제 ‘PC하다’ 대신 ‘워크(woke 깨어난)’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워크는 우리말의 ‘깨시민(깨어있는 시민)’과 비슷한 말이다. 본래 긍정적인 의미였다가 반대진영에 의해 조롱하는 의미가 된 것도 비슷하다.

실사 ‘백설공주’ 흥행·비평 저조

좌파 매체도 ‘CGI 난쟁이’ 비판

트럼프의 DEI 적대 도움 준 꼴

답습 아닌 참신한 접근 필요

백설공주에 구릿빛 여배우 기용

지난주에 개봉한 디즈니 ‘백설공주’는 1937년 작 애니메이션을 DEI적으로 개조한 실사판으로서, 비판자들에게 “백설(Snow White)이 아니라 깨설(Snow Woke)”이라는 비웃음을 받고 있다. 원작 애니와 그 바탕이 된 그림동화의 ‘눈처럼 흰 피부라서 백설공주’라는 설정을 뒤엎고 DEI에 따라 구릿빛 피부의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를 기용하고, 또 왕자 대신 의로운 도둑을 등장시키는 등 원작을 크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우파 매체인 미국 방송 폭스뉴스는 주연인 지글러가 원작 애니의 왕자를 “스토커”라고 부른 점 등을 지적하며 영화가 원작의 전통과 향수를 훼손한 것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좌파 매체인 영국 신문 가디언도 영화에 혹평을 퍼부었다. 가디언이 특히 비난한 것은 일곱 난쟁이 부분이다. 디즈니 실사판은 일곱 난쟁이를 실제 왜소증 배우들 대신 CGI(컴퓨터 생성 화상)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구현했고 그중 한 난쟁이만의 목소리 연기를 왜소증 배우에게 맡겼다. 또 원작에 없는 의적단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다양한 인종·성별로 구성돼 있고 그중에 왜소증인 사람도 한 명 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이 어설프고 유사 진보적인 접근 방식이 너무 지겹다”라고 일갈했다.

사실 디즈니는 원래 왜소증 배우들로 일곱 난쟁이를 구현하려 했었다. 그런데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왜소증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왜소증 사람들을 시대착오적인 ‘동굴 난쟁이’ 이미지로 고착시킨다”고 비판한 것을 계기로 이렇게 바꾼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왜소증 배우들이 “가뜩이나 적은 일자리 기회가 날아갔다. 딘클리지가 왜소증 배우 전체를 대변할 수 있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이것도 차별’ ‘저것도 차별’ 소리를 듣고 갈피를 못 잡다가 죽도 밥도 안 된 상황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백설공주’ 실사판은 영화 리뷰 플랫폼 ‘로튼 토마토’의 평론가 평점에서도 100% 만점에 42%에 불과한 점수를 받았다. 게다가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역대 디즈니 애니 실사판 중 최하위를 기록해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한국에서의 흥행과 평점도 매우 저조하다.

그러나 할리우드 리포터,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미국의 여러 매체는 영화가 “지나치게 깨시민스러워서 보수적인 관객이 반감을 샀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기자도 동의한다. 오히려 디즈니가 문화 제국주의 및 자사가 개발한 캐릭터·브랜드 가치를 계속 재생산해 수익을 얻으려는 고집을 버리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성·포용성 요소를 억지스럽고 안일하게 결합한 결과라고 본다.

남녀·다인종·장애인을 아우른 의적단과 백설공주의 모습을 보자. 마치 ‘우리 디즈니는 DEI를 이렇게나 구현하고 있어!’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중세 유럽 복식을 미국 디즈니 애니 특유의 스타일로 변형한 의상을 걸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정주의적 디즈니 실사판의 모순이다. 왜 디즈니는 애니 ‘모아나’처럼 비서구 문화권을 배경으로 비서구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옛 유럽 동화를 고증에 맞지 않게 비유럽계 인물들을 등장시켜 실사화할까. 억지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미국적 문화 제국주의로까지 보인다.

100년 전 애니 이야기의 한계

디즈니가 이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뉴욕타임스 등이 지적한 대로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다. 사실 원작 그림동화 ‘백설공주’는 외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계모가 의붓딸을 질투해 살해하려는 것부터 유리관에 누운 공주를 일면식도 없던 왕자가 오로지 미모에 반해 데려가는 것까지 현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에는 괴이하고 불편한 요소가 많다. 원작 애니는 그런 부분을 가족 영화에 맞게 순화했지만, 거의 100년 전에 나온 애니의 한계로 공주가 너무 수동적인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현대에 실사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리스크도 따른다. 따라서 디즈니는 쉬운 길로 익숙한 원작의 리메이크를 택했다. 원작 애니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이용하면서 현대 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DEI적으로 이야기를 수정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걸 잘 해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을 것이다.

디즈니가 옛 동화 기반 애니의 실사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미 개발한 애니 캐릭터의 이미지를 계속 재생산해 각종 관련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주연 지글러는 자신의 외모 매력을 반감시키는 원작 애니 스타일 단발머리를 하고(원작 애니가 나온 1930년대에는 힙한 헤어스타일이었지만), 가디언이 “수퍼마켓 아동복” 같다고 비꼰 원작 애니 스타일 드레스를 입고 나와야 했던 것이다.

이야기 수정도 진부했다. 백설공주가 주체적이고 용감한 소녀로서 새 왕비의 폭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움직인다는 설정은 이미 2012년에 나란히 개봉한 영화 ‘백설공주’와 ‘스노우화이트 앤 헌츠맨’에 나온 바 있다. 차라리 현대의 고질병인 외모지상주의에 초점을 두고, 사악한 거울의 가스라이팅에 의해 외모 강박증으로 미쳐버린 새 왕비를 백설공주가 구해주는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참신했을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DEI는 미국에 심한 악영향을 준 장난질(hoax)이었다”라고 말했는데, 과도한 DEI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DEI 자체를 적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한 적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상업주의와 뒤섞인 안일하고 억지스러운 DEI다. 디즈니는 이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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