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터넷소통협회 부설 더콘텐츠연구소가 화장품업계를 분석한 결과, 다수의 브랜드를 거느린 '모기업'일수록, 개별 브랜드를 어떻게 지원하고 전체 브랜드 세계관을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핵심 성공요인으로 조사됐다. 모기업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어떻게 콘텐츠를 설계하고, 이를 통해 패밀리 브랜드에 낙수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지 등이 성과의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인스타그램은 매달 하나의 '뷰티 테마'를 설정하고, 해당 주제에 맞는 제품들을 다양한 패밀리 브랜드에서 골라 하나의 콘텐츠에 큐레이션 하듯 소개한다. '수분 충전', '썬케어', '숙면'과 같은 구체적인 키워드를 기반으로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계열 브랜드들이 보유한 제품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감각적인 이미지 구성과 글로벌 감성의 언어 선택, 세련된 피드 구성은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며, 콘텐츠 내 댓글 이벤트나 투표 기능 등을 활용해 소비자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전략도 적극적이다.
유튜브에서는 보다 깊이 있는 콘텐츠가 중심을 이룬다. 대표 콘텐츠 시리즈인 '태평양에서 아모레까지'는 단순히 브랜드 히스토리를 나열하지 않고, 현직 실무자가 직접 등장해 퀴즈나 토크 형식으로 스토리를 풀어간다. 브랜드의 철학, 기술력, ESG 활동까지 진중한 주제를 부담 없이 전달하는 이 구성은 소비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한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은 모기업의 SNS를 하나의 콘텐츠 허브 플랫폼으로 설계하고, 패밀리 브랜드에 대한 낙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브랜드 하나하나를 분절된 존재로 소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레퍼시픽이라는 브랜드 생태계 전체를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반면 LG생활건강은 이와 같은 전략적 설계나 실행력 면에서 여러모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사실상 비활성화된 상태이며,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서브 계정 역시 게시물 수가 적고 블루뱃지 인증조차 없어 소비자에게 '공식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평이다. 블로그 채널에는 '빌려쓰는 지구스쿨' 등 긍정적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담겨 있지만, 디자인이 올드하고 인터페이스가 불편해 콘텐츠의 전달력과 확산성이 다소 떨어진다.
유튜브 또한 개선점이 엿보인다. MBTI 테스트, 짧은 드라마 형식의 콘텐츠 등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난 포맷을 반복하면서 브랜드만의 스토리텔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콘텐츠 운영은 결국 LG생활건강이 보유한 브랜드 자산과 기술력의 무게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모기업으로서의 서포트 기능 역시 사실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애경산업은 최근 인스타그램 중심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콘텐츠 썸네일 정리, 감도 높은 피드 구성, 밈 기반 릴스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팔로워 증가와 소비자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행 중인 콘텐츠 포맷을 브랜드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접목해 일상 속 친근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내는 전략은 일정 부분 성공적이다. 환경변화에도 고객과 끊김 없는 소통은 브랜드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소통전략은 실이 아닌 득이다.
한국화장품은 디지털소통 전략 부재에 따른 실행력 부족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인스타그램 외에는 운영 중인 공식 채널이 거의 없으며, 제품별 계정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하나 콘텐츠의 전문성, 일관성 모두 부족하다. 콘텐츠는 대부분 단순한 제품 이미지 나열에 그치며, 스토리텔링이나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유튜브와 블로그 역시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브랜드의 존재감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SNS를 통해 모기업의 힘이 어떻게 패밀리 브랜드 전체에 시너지를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전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모기업의 콘텐츠 역량이 곧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로 직결되는 시대. 콘텐츠가 곧 브랜드라는 이 새로운 원칙을 누가, 어떻게 실현해내는가에 따라 디지털 시장에서의 브랜드 성패가 갈릴 것이다.
박영락 한국인터넷소통협회 회장·더콘텐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