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공동체 ‘메노스피어’, 남성은 보이지 않는 적 대신 페미니즘을 겨눴다

2025-10-31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 | 송은혜 옮김 | 바다출판사 | 352쪽 | 1만9800원

올해 초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인셀’ 문제를 생생하게 다뤄 영국은 물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인셀이란 여성과의 연애나 성관계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고 좌절감에 사로잡힌 남성 집단을 가리킨다.

일부 남성 집단에 대한 문제 의식은 출판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남성들이 왜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지를 분석한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창비)가 나왔고, 지난달에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뒤처지는 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의 <소년과 남자들에 대하여>(민음사)가 출간됐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하며 극우 정치 세력과 친연성을 보이는 일부 남성 집단의 문제가 진지한 지적 담론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호주 사회학자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의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는 이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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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된 분석 대상은 영어권에서 이른바 ‘매노스피어(Manosphere: 남성계)’라고 알려진 집단이다. 매노스피어라는 용어는 2009년 11월 ‘더 매노스피어’라는 이름의 블로그에서 처음 사용됐다. 남성 권리 운동가, 픽업 아티스트(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방법을 전수한다고 주장하는 남성들), 인셀, ‘믹타우’(여성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남성들)를 가리킨다. 인종적으로는 백인 남성들이 매노스피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의 학업 성취도, 수감률, 자살률 등은 확실히 악화하는 추세다. 저자는 그러나 이 같은 통계만으로는 매노스피어에서 활동하는 남성들이 여성과 사회를 향해 쏟아내는 강도 높은 불만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불만의 뿌리에는 “남자다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20세기 남성들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방어하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과 사회를 지킬 의무가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남성은 공적 영역을 담당하고 여성은 사적 영역을 담당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남성성의 사명’은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부상하면서 해체됐다. 시장과 경쟁을 숭배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경제를 넘어 일상까지 침투하면서 “이제 삶은 더 이상 행복이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오직 돈, 돈, 돈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신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들이 공적 영역에서 어떤 기능적 역할도 수행하지 않고 오직 장식적인 존재나 소비자로만 살아가도록 부추기는 문화”다. 남성은 오직 소비 능력을 통해서만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공동체나 사회적 연대로부터의 정서적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매노스피어 남성들의 분노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좌절과 혼란이 깔려 있다.

흥미롭게도 남성들의 불만은 “거의 대부분 섹스와 연애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불행의 원인을 복잡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시스템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여성이나 페미니즘, 혹은 사랑처럼 눈에 보이고 이해하기 쉬운 대상으로 전가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온라인상에서 매노스피어 커뮤니티에 결집하는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욕구로 풀이된다. 그러나 매노스피어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가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이라는 점에서 매노스피어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 계발은 거의 언제나 실패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자원의 제약뿐 아니라 자기 계발이 만드는 비현실적이고 달성 불가능한 기대 때문이다.” 매노스피어는 결국 ‘가짜 공동체’에 불과하다.

매노스피어 남성들의 불만은 반정치와 극우정치의 자양분이자, 여성은 물론이고 사회 자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까지 극단화할 위험성이 높다. 전 사회적 차원의 대응이 시급한 이유다.

금지나 추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부 서구 국가에서 인셀 커뮤니티를 테러 집단에 준하는 강도로 감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남성들의 고립과 소외를 심화하고 오히려 더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개인들의 소셜미디어 사용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소셜미디어 기업은 수익의 기반이 되는 사용자 규모를 줄이는 데 협조적이지 않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청소년 단체, 노동조합, 스포츠 클럽, 교회 등 오프라인 공동체를 복원하거나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단기간에 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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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목받는 방식은 ‘대안 서사’라 불리는 접근법이다. “여성혐오적 사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에 남성에게 그들의 문제가 발생한 실제 원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접근의 핵심은 ‘비난’이 아닌 ‘이해’다. 청년 남성의 불만을 망상으로 치부하는 대신 진지한 고민으로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저자는 “나는 모든 사람이 분노에 차 여성혐오적 발언을 쏟아내는 남성과 직접 대화에 나서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혐오 이데올로기 전파로 돈과 영향력을 확보해온 매노스피어의 리더들은 대화 상대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들과의 대화는 혐오 담론에 확성기를 제공할 뿐이다. 저자는 “매노스피어 집단에 완전히 속해 있지는 않지만 그 주변에 있거나 그 메시지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중립적인 ‘관망자’들과 대화하는 데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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