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을 ‘30∼40년 동안 전쟁을 치른 적 없는 엉터리(some random) 국가’라고 지칭해 당사국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실제로 보장하고 싶다면, 가장 좋은 안보 보장은 미래 우크라이나에 미국인에게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30∼40년 동안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엉터리 나라에서 2만명의 군대를 파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안보 보장”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경제적 보장은 그 국가를 재건하고 미국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통령실은 이후 설명자료에서도 “유럽에서 미국의 도움 없이 러시아를 의미 있게 억제할 수 있는 군사 자원을 가진 국가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 파견 방침을 밝힌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뿐이다.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 다른 나라들은 비공개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미국과 함께 전투를 치른 나라다.
밴스의 이 같은 발언은 즉각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정치권의 분노를 불렀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누 프랑스 국방장관은 이날 의회에서 “지난 60년동안 목숨을 잃은 약 600명의 프랑스 병사들은 우리는 물론 동맹국들로부터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군 대령 출신인 미셸 고야도 X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함께 전사한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이 밴스의 말에 반발해 무덤에서 돌아눕는다”며 분노했다.
영국 우파 대표 신문인 더 선은 “부끄러운 밴스”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실었다.
제임스 카트리지 영국 국방부 조달 담당 부장관은 SNS에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수천 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내 동생과 전·현직 의원 여러 명이 파병됐다”며 “이 같은 헌신과 희생을 무시하는 것은 심히 무례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도 “밴스는 틀렸다”를 세 번이나 반복하며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미국의 편’에 섰다고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조니 머서 전 영국 보훈장관은 “밴스는 건방 떨지 말고 조금이라도 존중을 보이고 자신을 무례하게 보이게 만드는 일을 그만두라”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FT에 따르면 지난 25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함께 싸우다 600명 이상의 영국 군인이 사망했다. 프랑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약 90명을 잃었고, 영국과 함께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미국 주도 연합에 합류했다.
논란이 커지자 밴스 부통령은 X에 자신의 발언이 영국이나 프랑스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며 잠재적 참가국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두 나라 모두 지난 20년 이상 미국과 함께 용감하게 싸웠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말해서 자원봉사를 하는 국가들 중에는 전쟁 경험도 없고 의미 있는 일을 할 만한 군사 장비도 없는 나라들이 많다”며 유럽을 깎아내렸다.
FT는 밴스의 발언에 대해 영국과 프랑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바탕으로 한 유럽 평화 계획을 뒷받침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