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약약강’ 트럼프 상대하는 법

2025-03-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격렬한 말다툼을 벌인 모습이 생중계됐다. 각자 국익을 걸고 나선 양자 회담에서 이런 모습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막후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날것 그대로 보는 일은 흔치 않기에 역사적 사건이 됐다. 특히 최고 통수권자들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고함치며 삿대질하는 장면은 트럼프의 국정 철학인 ‘미국 우선주의’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느껴졌다. 설마 하던 사람들에게 미국이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크라 안보보다 미국 국익 우선

힘의 논리 앞세워 약소국에 가혹

한국, 힘 키워야 할 때 정치 표류

약속을 수없이 어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믿을 수 없으니 미국이 안전 보장을 해야 한다는 젤렌스키의 거듭된 요청을 트럼프는 묵살했다. 트럼프는 누가 침략자이고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미국이 입는 피해 또는 얻을 이익이 더 중요한 기준이다. 러시아의 침략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상식과 선악 구분은 트럼프에겐 의미가 없다. 자비가 없는, 미국 우선주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러시아·중국·유럽연합(EU) 같은 강대국과 관계 정립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앞길을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고함 대전이 잘 보여준다. 앞으로 백악관에 들어갈 각국 지도자들은 트라우마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이익 추구를 지연시키는 듯한 태도는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의 맹공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말이다. 트럼프 표현대로 손에 패를 쥐고 있지 않은 젤렌스키는 약소국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힘의 논리로 세상을 보는 트럼프에게는 옳고 그름보다는 권력의 크기가 절대적 변수다.

젤렌스키 측 실수도 있다. 달라진 미국에 대한 현실 인식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밴스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간과했다. 트럼프는 2019년 젤렌스키에게 조 바이든 당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의 비리 혐의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군사 지원을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트럼프 탄핵을 촉발한 중심에 젤렌스키가 있었다. 밴스는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 없다”고 공개 발언할 정도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냉담했다. 또 미국 대선 열기가 고조되던 지난해 9월 젤렌스키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주를 방문한 것을 두고 미국 정치에 개입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시대 백악관 방문의 공식처럼 돼버린 아부의 기술도 발휘되지 않았다. 미국의 천문학적 전쟁 비용 지원에 적극적인 감사 표시가 없었다며 밴스는 미국 국민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례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간 젤렌스키가 세계를 돌며 평화의 사자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받았던 대접과는 판이했다. 미국 우선주의다.

젤렌스키는 백악관에 들어가던 날 아침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공화·민주 양당 소속 상원의원들과 숙소에서 만났다. 그레이엄은 공화당 내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지원론자다. 그레이엄은 젤렌스키에게 “미끼를 물지 말라”고 조언했다. 일을 만들지 말고 할 일, 즉 광물협정 서명을 마치고 신속히 나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광물협정을 통해 그간 미국이 쏟아부은 전쟁 비용을 회수하고, 첨단 기술 발전에 필요한 희토류 등 자원을 확보하며, 납세자의 돈을 쏟아붓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만 끝내고 싶은 트럼프의 강력한 의지에 대해 힌트를 줬지만, 젤렌스키는 자존심을 세웠다.

놀랍지 않게도 아직은 트럼프가 의도한 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백악관을 나와 런던으로 날아간 젤렌스키는 나흘 만에 백기를 들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과하고, 트럼프에게 서한을 보내 광물협정 서명과 휴전 논의를 시작할 뜻을 전했다. 젤렌스키가 원한 안전 보장 방안이 추가되지 않은 채로 광물협정 서명이 이뤄진다면 트럼프가 승기를 잡은 게 된다. 잠시 유예했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도 시행에 들어갔다. 대만 TSMC는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대만에 대한 방어 의지 질문이 나올 때마다 뭉갰던 트럼프는 투자 약속 이후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답해줬다. 공짜는 없다는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다.

트럼프는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지원을 하는데, 한국 관세는 평균보다 4배 더 높다고 저격했다. 트럼프를 상대해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힘없는 나라를 가혹하게 대하는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경제적 힘을 더욱 키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대통령 탄핵 사태로 정치와 정책이 표류하면서 그 반대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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