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정상 간에 공개적으로 고성이 오가며 ‘인류 역사상 이런 정상회담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의 첫 관문으로 내세웠던 미·우크라이나 광물협정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유럽은 더 이상 미국과 뜻을 같이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정상 회담 직후 유럽 국가 주요 정상들과 EU 지도자들의 발언은 미국과 유럽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정상회담 직후 공개 서한을 통해 “당신(젤렌스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여러분과 계속 협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우크라이나는 유럽이고,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라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늘려 침략자를 물리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NATO 사무총장 마크 뤼터와 회담 이후 X에 “침략자가 있다=러시아, 희생자가 있다=우크라이나”라고 올려,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지지함을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우크라이나 시민들보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평화를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라고 의견을 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럽 국가의 수반은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유일했다. 그는 X에 “강한 사람은 평화를 만들고, 약한 사람은 전쟁을 만든다. 트럼프는 그날 저녁 평화를 위해 용감하게 일어섰지만,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Thank you, Mr. President”라고 남겼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성장
이러한 상황에서 방위 산업, 특히 방위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유럽의 방위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는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NATO 혁신 펀드(NIF; NATO Innovation Fund)와 딜룸(Dealroom)이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유럽의 방위, 보안, 복구(DSR; Defense, Security, Resilience) 기술 스타트업들은 총 52억 달러(약 7조 원)의 VC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수치이며, 2019년과 비교하면 약 5배 성장한 규모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유럽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에서 방위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최고치인 10%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최근 2년간 2.5배 증가한 수치로, 유럽의 방위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양자 기술, 에너지 보안 분야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뮌헨은 방위 분야 주요 투자 허브로 부상했다.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 2024년은 2019년 이후 DSR 분야에 할당된 VC자금이 가장 많은 해였다.
DSR 분야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해결책이 가장 필요한 과제는 복잡한 환경에서 결정을 돕는 솔루션, 지상 및 공중 상황 인식, 위협 탐지, 에너지 저장 솔루션, 핵 에너지, 물 관리, 우주 주권 인프라, 해양 자율성(maritime autonomy), 공급망 회복력, 생명공학, 물 접근성, 식량 공급에 관한 솔루션이다.
3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부상하는 러시아의 군사력과 점점 국수주의적으로 변하는 미국에 맞서 방위 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긴급한 전략이 필요한 상황은 유럽 방위 기업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주 라인메탈(Rheinmetall), BAE 시스템즈(BAE Systems), 탈레스(Thales) 등 유럽 주요 방위 계약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역사적으로 방위 산업 투자를 기피해온 유럽의 벤처캐피털(VC) 투자자들도 방위 기술 스타트업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유럽의 대표 방위 분야 스타트업
이 같은 투자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 헬싱(Helsing)과 테케버(Tekever)가 있다.
2018년 독일 뮌헨에서 설립된 헬싱은 AI 기반 방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2024년에 45억 유로(약 6조 5000억 원)의 기업 가치로 4억 5000만 유로(약 65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헬싱은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인공지능(AI)’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실시간 상황 인식과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 시스템은 군사 영역뿐만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Mistral)과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군사 계약을 추진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2001년 포르투갈에서 설립된 테케버는 군사·민간 겸용 드론을 개발하며, 2024년 11월 시리즈 B 라운드에서 7400만 달러(약 990억 원)를 유치했다. 테케버의 드론은 해상 감시, 국경 보안, 재난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테케버는 NIF의 포트폴리오사 중 하나로 2001년 리스본공과대학(IST) 졸업생들이 설립했다. 2006년부터 유럽 기술 합작 사업을 통해 시장을 확장해 현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 지사를 두었다. 설립 20년이 지났지만, 이제야 시리즈 B라운드 투자를 받는 이유는 테케버가 설립과 동시에 매출을 발생시켜 부트 스트랩 방식으로 꾸준히 안정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금액의 투자가 필요한 방위 분야에서 매우 특이한 케이스이다.

#방위 기술 펀드의 등장과 투자 확대
방위 기술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도 새롭게 등장했다. EU는 지난 2024년 1월 1억 7500만 유로(약 1820억 원) 규모의 ‘방위 기술 투자 펀드(Defence Equity Facility)’를 출범시켰다.
앞서 소개한 NIF도 2023년에 출범했다. NIF는 딥테크 및 방위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10억 유로 규모의 펀드를 발표했다. NIF는 24개 NATO동맹국이 지원하는 독립 VC로 최대 1500만 유로의 초기 투자를 주도하고 후속 라운드도 지원한다. NIF에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NATO 국가 중 한 곳에 본사가 있어야 한다. 특히 국가 네트워크가 탄탄해, 포트폴리오사들에게 NATO 산하 시험 센터 90곳과 연합국 과학자 6000명 이상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NATO 산하 액셀러레이터인 나토 다이애나(NATO Diana)와 협력 관계여서, 나토 다이애나의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보조금을 받은 기업 및 창업자 등에 유기적으로 투자하기도 한다.
지난 1월에는 에스토니아 국영 펀드인 스마트캡(SmartCap)도 1억 유로 규모의 방위 기술 펀드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신규 방위 기술 VC 펀드를 지원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스마트캡은 방위 기술 펀드 이외에도 일반적인 VC펀드 지원자금인 스마트캡 VC Fund(SmartCap Venture Capital Fund), 기후 분야 회사에 직접 투자하는 스마트캡 그린 펀드(SmartCap Green Fund)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에 만들어진 국영 펀드가 최근 방위 기술 펀드를 출시했다는 사실은 방위 산업에 대한 유럽 기술 투자 업계의 높은 관심도를 보여 준다.
#유럽 투자자들은 왜 방위 기술에 주목하는가
유럽 투자자들이 방위 기술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늘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 3년간 지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투자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에너지, 농업, 광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럽과 관계가 긴밀한 두 나라의 전쟁으로 유럽의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방위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더불어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해 유럽이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 추세는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 생존을 꾀해야 한다는 ‘자강론’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AI, 드론, 양자 컴퓨팅 등 첨단 기술 발전으로 방위 기술의 혁신 가능성이 커진 것도 투자자들이 이 분야를 주목하는 이유다. 더불어 방위 기술이 민간 첨단 기술 분야에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한다. 예를 들어 자율성 AI(autonomy AI)와 컴퓨팅 기술은 방위 첨단 기술에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는 AI 칩과 프로세서의 발전을 견인할 것이기에 그 파급력이 매우 클 것이다. 또 드론 및 공중 무인항공기(UAV)의 협업 로봇 기술은 방위 부문뿐만 아니라 석유 파이프라인 검사, 철도 점검 등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그 밖에 그리드 기술과 스마트 그리드의 발전으로 에너지 저장 분야의 혁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방위 기술에 대한 투자는 민간 분야에 대한 확장성으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극대화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유럽의 방위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 번째 해결 과제는 방위 기술 투자 펀드의 집행 속도다. 2024년 출범한 ‘방위 기술 투자 펀드’는 아직 첫 투자를 진행하지 못했는데, 유럽투자은행(EIB)이 ‘듀얼 유즈 기술’ 관련 규정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탓이다.
방위 산업의 주요 고객이 되는 유럽 각국 정부의 조달 프로세스가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느리다는 점도 큰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지금은 투자 유치가 활발하지만, 스타트업이 첫 매출을 내기까지 조달 프로세스의 벽을 넘지 못하면 민간 투자의 추가 유입도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 투자자들 중 특히 공공 부문 펀드들은 ESG 기준 때문에 방위 기술 분야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방위 기술 스타트업의 수익률이 특별히 높은 것이 아니고, 규제와 윤리적 문제 등으로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긴다면, 투자자들은 굳이 여기에 투자할 필요가 있는지 망설이게 될 것이다. 또 방위 산업은 많은 자본이 필요한 하드웨어 중심 비즈니스 모델이 많아, 예측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SaaS 모델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그 밖에 미국 방위 기술 기업들에 비해 규모와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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