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시리아의 봄’, 주변국은 총성 없는 전쟁 중

2025-03-03

내전 끝낸 시리아의 ‘새판 짜기’

이슬람 극단주의 시리아해방기구(HTS)의 승리로 13년 만에 시리아 내전이 끝났다. 전후 질서 향방을 두고 중동 각국의 밀고 당기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HTS는 북서부 이들립 지역을 장악한 지난 5년 동안 종교의 이름으로 인권을 짓밟고 폭압 통치를 이어왔다. 과연 정상적으로 시리아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는 당연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스만 제국’ 재현 꿈꾸는 튀르키예

HTS의 시리아 점령은 튀르키예의 후원 덕에 가능했다. 아사드 정권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튀르키예는 내전 내내 반군 지원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튀르키예로 물밀듯 들이닥친 시리아 난민을 다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라도 반군의 승리가 절실했다.

그런데 문제는 튀르키예가 후원한 HTS가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튀르키예에선 HTS의 종교적 색채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정부 역시 종교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HTS가 장악했던 이들립 지역에서는 튀르키예 화폐가 통용됐을 정도로 튀르키예의 경제적 영향력도 막강했다.

13년 만에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의 승리로 막 내린 시리아 내전

‘반군 후원’ 튀르키예 영향력 견제 위해 이스라엘은 러시아에 접근

이란은 시리아-레바논 잇는 통로 상실…튀르키예 향한 불만 커져

시리아 유전지대엔 미군도 주둔…철수하면 IS 부활 가능성 우려

에르도안 정부는 과거 중동을 좌지우지했던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꿈을 꾼다. 에르도안의 아들 빌랄은 지난 1월 1일 대규모 군중 집회에서 튀르키예의 국부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만든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에르도안 정부가 2020년 모스크로 바꿔 문을 열었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를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알아크사 모스크와 예루살렘을 위해 여기에 모였다”고 외쳤다. 하마스의 빈자리를 튀르키예가 채우고 싶다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했다.

이스라엘 목표는 ‘약한 시리아’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시리아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고원을 뺏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직접 충돌하지 않도록 설정한 완충 지역까지 장악하면서 시리아가 정상적인 국가로 재건할 수 없도록 하는 데 힘을 쏟는다. 약한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목표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을 두고 가뜩이나 튀르키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스라엘로서는 알아크사 모스크와 예루살렘 해방을 입에 올리는 에르도안 정부와 주변 사람들이 마뜩잖다. 이란과 함께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이스라엘과 각을 세우고 있다.

2007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자 2010년 튀르키예의 인도주의 단체가 여섯 척의 배로 선단을 구성해 식량·의약품·건축자재 등 인도주의적 구호품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해군 특공대가 가자 해안에서 약 130km 떨어진 국제 수역에서 선단을 차단하면서 튀르키예 인도주의 활동가 10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다. 2013년 이스라엘은 튀르키예에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2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사건 이후 양국 관계는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발발 이후에는 관계 호전이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튀르키예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아사드 정부가 무너지면서 이란의 영향력이 시리아에서 사라졌지만, 튀르키예가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팔레스타인을 매개로 이란과 협력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란이 튀르키예의 도움으로 시리아를 통해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계속 지원한다면 이스라엘로서는 악몽의 재현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러시아가 타르투스의 해군 기지와 라타키아주 흐메이밈 공군 기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미국에 로비를 벌이고 있다.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해군·공군 기지 원하는 러시아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서 시리아에서 물러난 러시아가 이스라엘의 바람대로 해군과 공군 기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을지는 시리아의 새로운 주인 HTS의 동의가 필요하다. 러시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HTS 역시 러시아의 기지 사용에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러시아로 망명한 아사드를 시리아로 송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시리아는 현재 무엇보다도 미국과 유럽이 부과하는 경제제재 해제가 급선무인데 유럽은 경제제재 해제 조건으로 러시아가 더는 시리아에서 해군과 공군 기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HTS에 요구한다.

이스라엘의 요청대로 미국이 러시아의 기지 사용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두고 미국과 러시아가 우호적으로 대화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시리아 해군과 공군 기지라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다.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아사드 정권을 지지했지만, 양국의 이해관계는 서로 달랐다. 러시아는 기지를 안정적으로 계속 사용하길 원했지만, 이란은 헤즈볼라를 계속 지원하기 위해 시리아라는 통로가 필요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 기지를 계속 공격할 수 있도록 러시아가 레이더망을 작동하지 않은 데서 볼 수 있듯, 이스라엘을 둘러싼 러시아와 이란의 셈법은 완전히 달랐다. 러시아는 이란이 시리아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바랐기에 불안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대 이스라엘 항쟁 이란 기지를 이스라엘이 파괴하는 것을 도운 셈이다. 그래서 이란은 러시아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시아 초승달’ 무너진 이란의 고민

시리아를 잃은 아픔이 가장 큰 나라는 이란이다. 이란에서 이라크·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 초승달’ 저항의 축에서 중요한 통로인 시리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시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란이 왕관의 보석으로 여기는 헤즈볼라가 있는 레바논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란이 헤즈볼라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라크에서 시리아의 북동부 쿠르드 지역을 거쳐 레바논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최선일 텐데, 시리아 내 쿠르드는 친이스라엘 세력으로 시리아민주군(SDF)을 결성했다. SDF는 내전 내내 시리아 정부군과 아울러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HTS 및 다른 극단주의 반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현재 튀르키예 정부는 SDF를 눈엣가시로 여겨 소탕하고자 한다. 이에 이란이 한때 SDF에 드론을 지원한다는 말이 돌았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은 상태다. 사실 이란이 SDF를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튀르키예와 척을 져야 할 뿐 아니라 이란 내 쿠르드족 독립 문제 때문에 시리아 쿠르드 지원은 자기모순이다.

차라리 튀르키예가 SDF를 격퇴한 후 이란이 튀르키예와 협력해 시리아 내 통로를 확보하는 것을 더 나은 방책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아사드 정권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튀르키예를 향한 불만을 이란은 애써 삭이고 있다. HTS는 상호존중 원칙을 지킨다면 이란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군은 철수·잔류 놓고 저울질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이어지는 길목인 시리아 유전지대에 미군 2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마따나 미군이 이라크로 철수할 가능성이 있으나 SDF를 지원하던 미군이 빠지면 소멸하지 않은 IS가 위험한 수준으로 발 빠르게 재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군 지원 때문에 SDF를 공격하지 못하던 튀르키예가 극단주의자들을 동원해 공세를 펴 시리아 쿠르드 지역을 점령하고 이에 편승해 IS가 부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HTS는 말로는 쿠르드인을 존중하고 SDF를 시리아군으로 편입해 통합 정부를 이루겠다고 하지만, SDF는 흔쾌히 응하지 않고 있다. 자치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SDF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만일 SDF 보호 정책 없이 철수한다면 미군을 도와 IS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비극을 시리아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튀르키예 쿠르드 반군은 해체를 선언했지만, SDF는 이러한 해체 선언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잘라 말한다.

사우디는 극단주의 세력 부상 경계

끝으로 아랍은 시리아가 이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실을 기쁘게 여기나 표현은 아낀다. 볼썽사납던 아사드 정권에 아랍연맹 회원자격을 다시 주면서까지 시리아를 이란으로부터 떼어내려고 했는데 HTS가 들어서면서 이란이 설 자리가 없어졌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HTS의 종교적 극단주의 성향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튀르키예가 시리아에 영향력을 확대해 이슬람주의 성향의 시리아가 등장하는 것과 아울러 이란이 다시 시리아에서 세력을 만들 가능성을 경계한다.

시리아 내전은 끝났다. 그러나 새로운 시리아를 둘러싼 각국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처럼 치열하게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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