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보다 더 나쁜 것

2025-03-05

나라가 어려우니 예전 위기 상황이 떠오른다. 1997년 말 외환위기는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으로 불린다. 정부는 그해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직후 오히려 외자 이탈이 가속화했다. 위기의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정부의 IMF행 번복 등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불신 때문이었다. 당시 김대중(DJ) 대선후보의 재협상 발언도 기름을 끼얹었다.

12·3 계엄 이후 국민 분열 극심

윤 대통령, 헌재 결정 승복 안 밝혀

법치 유린 선동, 민주주의 허물어

흔히 지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된다. 그리고 화재와 폭발 등 2차 재해가 피해를 키운다. 어쩌면 외환위기도 비슷한 경로를 따른 셈이다. 지진이든, 외환위기든 겪지 않는 게 좋지만 닥칠 수 있는 재앙이다. 그런데 피해가 커지는 것은 사회의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지진의 경우엔 화재 진압 같은 방재시스템이, 외환위기의 경우엔 시장 안정 조치와 경제개혁 실행력 등이 해당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민주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인프라를 시험대에 올렸다. 그날 밤 시민들이 무장한 군인들을 막고, 국회가 계엄 해제 의결을 했을 때만 해도 “민주주의의 승리”(AP통신)란 평가가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경로는 순탄치 않다. 최근 많은 국민의 나라에 대한 불안감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국민 분열과 대립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화됐다. 정치 진영에 따라 상대편을 적으로 대한다. 사상 초유의 법원 난입·난동까지 벌어졌다. 재판관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구속기소돼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이 혼란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스팔트에 머물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국가적 이슈로 공식화한 이는 윤 대통령이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의 탄핵심판 최후진술은 국민 기대와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나든 승복하겠다는 의사 표명이 없었다. 국민 통합에 대한 호소도 없었다. 시종 자신이 왜 비상계엄을 했는지에 대한 강변이었다.

그래놓고는 서부지법 난동자들과 관련해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며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부린 난동, 짓밟힌 사법질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법원 곳곳을 때려부수고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판사를 찾아다니는 광란의 현장을 다 보지 않았는가. 그의 미안함 언급은 광장의 지지자들에 대한 은밀한 격려로 읽힌다.

법치와 삼권분립, 비폭력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 기둥을 뽑아내려는 움직임이 광장에서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그걸 막아야 할 정치권은 거꾸로 광장의 힘에 편승하고 있다. 급기야 3·1절 탄핵 반대 집회엔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하고 있다. 모두 때려부숴야 된다. 쳐부수자”란 극언이 등장했다. 발언의 주인공은 경찰 치안정감 출신인 국민의힘 의원. 체제 수호자여야 할 여당 국회의원이 파괴의 선동자가 됐다.

민주주의 연구 권위자인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구체적 신호를 제시했다. ▶헌법 부정 ▶선거 불복 등 선거제도 정당성 부정 ▶상대 정당을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 ▶지지자들의 폭력행위에 암묵적 동조 등이다. 유감스럽게도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와 지지자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닮았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가 우리 주변에서 깜박이고 있는 것이다.

12·3 계엄은 한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계엄은 나빴다. 계엄 이후 분열과 폭력의 선동과 법치의 부정은 더 나쁘다. 국민은 갈라지고, 법치는 위태로워졌다. 이 나라를 어디로 몰고 가려고 이러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