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커머스와 핀테크 견인에 디지털 르네상스 맞는 아세안 경제

2026-01-06

2025년 12월 17일. 인도네시아 증시에 디지털 은행인 ‘슈퍼뱅크’가 상장했다.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가총액이 2조4000억원을 넘어섰고, 이후 연이틀 강세를 이어갔다. 카카오뱅크의 지분 가치는 2044억 원으로, 투자 2년 만에 7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슈퍼뱅크가 출범 9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하고 고객 500만명을 확보한 배경에는 동남아시아 최대 수퍼앱인 그랩과 싱가포르텔레콤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있었다.

AI 기반 추천, QR 결제 뒷받침 속

동남아 비디오 커머스 시장 확대

소액·고빈도 소비 더 증가할 전망

인도네시아 성인 절반이 여전히 충분한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구조를 감안하면, 이는 단발적 흥행이 아니라 아세안 디지털 금융의 성장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디지털 금융을 포함한 혁신 서비스가 각국에서 빠르게 확산하며, 전체 동남아 디지털 경제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5년 동남아 디지털 경제 규모는 3050억 달러를 돌파하며 아세안 6개국 기준 전년 대비 15% 성장했다. 성장의 핵심축은 비디오 커머스, 디지털 금융, 인공지능(AI)이다.

비디오 커머스는 쇼핑보다 엔터테인먼트에 가깝다. 판매자는 실시간 방송으로 시연하고, 소비자는 콘텐트를 시청하며 구매 결정을 한다. 2022년 전체 이커머스의 5%에도 못 미치던 시장은 460억 달러로 성장, 전체 거래액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됐다. 모멘텀 웍스-탭컷(Momentum Works-Tabcut)의 2025년 상반기 리포트에 따르면 비디오 커머스에서 인도네시아의 시장 규모는 60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을 제치고 최대 시장의 자리를 차지했다. 태국(59억 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동남아 비디오 커머스 셀러는 300만명을 넘으며 전년 대비 80% 증가했다. 상위 1000명의 크리에이터는 월 30회 이상 방송하며 판매를 견인한다. 인도네시아 톱10 스토어 중 9곳이 뷰티·퍼스널 케어 브랜드인 이유는 짧은 시연으로 효과를 보여주고 실패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로컬 브랜드인 ‘세카이’(Sekai·가전)와 ‘바르디’(Bardi·스마트홈 기기)의 팔로워는 20만명을 넘었고, 태국 ‘시섬’(Seasum) 레깅스는 틱톡 바이럴을 타며 히트 상품이 됐다.

‘검색의 경제’에서 ‘추천의 경제’로

이 시장은 ‘6달러의 경제’다. 평균 주문액 6~7달러의 소액·고빈도 소비가 거래를 활성화하며, 베스트셀러 상위 1000개 제품이 전체 판매의 25%를 차지한다. 기존 이커머스가 ‘검색의 경제’였다면, 비디오 커머스는 AI 기반 ‘추천의 경제’로 발전했다. 플랫폼은 시청 시간과 반응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화한 라이브 방송을 연결하고, 실시간 상호 작용이 반복 구매와 신뢰로 이어진다.

이 혁신을 떠받치는 결제 인프라는 국가 QR 결제 시스템이다. 아세안 10개국 중 8개국은 이미 크로스 보더 연동을 시작했다. 디지털 결제 비중이 빠르게 늘면서 현금 사용률은 30%대 후반까지 떨어졌고 2030년에는 20%대 후반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총 디지털 결제 거래액(GTV)은 1조4120억 달러에 달하며, QR·전자지갑 결제가 카드 결제를 앞질렀다.

선구매 후결제(BNPL)를 포함한 디지털 대출·소액 할부도 확대되며, 소비자는 쇼핑·배달·모빌리티 앱 안에서 자연스럽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한다. 별도의 은행 앱을 열지 않아도 결제·대출·보험이 생활 속 서비스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은행(invisible banking)’ 혹은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이 일상화됐다.

실제로 소비자 절반이 이런 식으로 결제하고, 대출과 보험도 생활 앱에서 해결한다. 슈퍼뱅크의 빠른 흑자 전환 역시 이러한 결제·플랫폼 생태계를 기반으로, 기존 금융 사각지대의 고객층을 빠르게 흡수한 사례다. 결제 인프라의 고도화는 금융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서비스의 배경으로 물러나게 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금융’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운영하는 핵심 도구가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동남아 기업 전반에서 AI 활용은 이미 보편화 단계에 들어섰다. 챗GPT 같은 최신 생성형 AI 모델 경쟁보다 업무 효율 제고와 수익 창출이 활용의 핵심이다. 배달·모빌리티 플랫폼은 AI로 수요를 예측하고 경로를 최적화하며, 개인화 광고와 프로모션을 자동 추천한다. 예를 들어 동남아 최대 수퍼앱인 그랩은 AI 기반 배차·주행 경로 최적화 기능(라이드 가이던스)을 도입했을 때 운전자의 시간당 수익이 약 20% 증가했고, 자체 AI 마케팅 도구에서 광고 열람과 클릭 반응이 각각 25%, 50% 개선됐다는 내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게임 산업에서도 AI는 핵심 도구다. 동남아 수퍼앱인 씨(Sea)의 게임 콘텐트 사업자인 가레나(Garena)는 AI로 이용자 수준에 맞춘 매치메이킹과 난이도 조정, 부정행위 탐지를 수행하며 사용자의 앱 이용 시간을 늘리는 한편 실제 상품 및 아이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크로스보더 결제 늘며 시장 확대 전망

과거 동남아 디지털 경제는 그랩과 고젝 등의 ‘수퍼앱 전쟁’으로 요약됐다. 지난해에는 비디오 커머스가 결제와 물류를 내재화했고, 핀테크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안으로 스며들었다. AI는 모든 접점에서 사용자 경험을 높이고, 기업 수익을 증가시켰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시장 구조의 재편과 질적 성장을 보여준다.

2026년 이 흐름은 한층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크로스보더 QR 결제와 송금·정산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생성형 AI는 크리에이터의 콘텐트 제작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은 라이브 방송을 가능하게 하며, 금융 포용성 확대로 중산층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소액·고빈도 소비 구조도 점차 확대돼 6달러 경제가 10달러, 15달러 경제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아세안 경제는 디지털 르네상스의 시작점에 서 있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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