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두 번째로 AI법 제정한 한국
지난해 12월 26일 ‘인공지능(AI)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264명 중 찬성 260명, 반대 1명, 기권 3명으로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간략히 줄여 ‘AI기본법’이라고 부르는 이 법은 공포 후 1년이 지나서 시행된다. 그 전에 시행령을 만들어 세부 사항을 규정하게 된다. AI 관련 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유럽연합(EU)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한다.
지난해 말 국회 통과한 AI기본법, 여야 구분 없이 압도적 찬성 얻어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설치, AI 기본계획 수립 법제화도
고영향·생성형 AI 등 법률 용어 정의하고 안전한 AI 위한 의무 규정
남은 과제는 시행령 제정…글로벌 경쟁에 뒤지지 않게 지혜 모아야
방송에서 보면 항상 싸우기만 하는 국회의원들이 언제 이런 훌륭한 일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특히 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래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쉬지 않고 협의하고 조정해 법안을 만들어 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당 간의 현안으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국가 미래를 위한 일에는 머리를 맞대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규제와 진흥, ‘두 마리 토끼’ 잡기
2022년 말 챗 GPT 등장 이후 AI는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에 개최됐던 미국의 CES 전시장도 온통 AI가 화두였다. 처음에는 AI의 학습과 추론이 주 관심사였지만 이제는 언어 번역의 단계를 넘어 창작과 감성 처리 영역으로 질주하고 있다. 내년에는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을 모방할 것이고, 더 나아가 문화와 국방 분야까지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국가와 사회는 새롭게 대두한 이 AI를 어떻게 대하고 활용할 것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법 체계상 이러한 대응이 어렵게 돼 있었다. 신기술이 출현해 사회와 산업 현장이 변하고 있어도 법으로 가능한 활동을 정해주기 전에는 대응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통과된 AI기본법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AI의 최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태도는 방관 내지는 관용적이다. 이들 나라는 AI에 관한 법을 만들고 있지 않다.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어떻게 되는지 좀 더 두고 보자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태도의 배경에는 AI에 관한 한 자신들이 선진국이고 미래 세상을 자신들이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AI법을 가장 먼저 만든 유럽은 입장이 좀 다르다. 유럽은 이미 디지털 혁명에서 낙오해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 그러니 또다시 AI 혁명에서 외국 기업에 의해 피해를 볼까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법안이 규제 중심의 유럽 AI법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AI기본법은 대체로 규제와 진흥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심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 AI법의 세 가지 항목은
AI기본법은 AI 산업의 발전 방향, 특히 AI 산업에 대한 규제 방향을 명확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AI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규정하고, AI가 인간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내용을 포함한다. AI 기본법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AI의 발전과 신뢰 확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은 대통령이 맡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3년마다 AI에 대한 정책의 기본 방향, 전문인력 양성 등에 대한 ‘AI 기본계획’을 수립 및 시행해야 한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AI 기본계획, 활용 촉진, 인프라 관련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둘째는 AI 용어를 법률적으로 정의했다. 법률적인 진흥과 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될 수 있는 AI의 종류를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고영향 AI’과 ‘생성형 AI’ 등의 법률 용어를 정의했다. 고영향 AI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 기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AI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공급, 의료 서비스, 교통체계, 공공서비스에 이용되는 AI를 포함한다. 생성형 AI는 입력한 데이터의 구조와 특성을 모방해 글이나 소리·그림·영상 등 다양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AI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LLM’(대형 언어 모델)이 생성형 AI다.
셋째는 안전한 AI를 위해 고영향 AI와 생성형 AI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고영향과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소비자에게 이를 사전에 알려야 한다(투명성). AI 학습에 사용된 누적 연산량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위험성을 평가해 발생 가능한 사고에 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한다(안정성). AI를 활용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영향 AI에 해당하는지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고영향 여부). 고영향 AI나 이를 통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AI의 안정성·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리 방안을 수립 운영한다(사업자 책무). 고영향 AI를 이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사전에 사람의 기본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영향 평가).
유럽은 ‘위험’, 한국은 ‘영향’에 주목
유럽의 AI법과 비교해 한국의 AI기본법은 대체로 융통성 있는 규제를 통한 진흥에 방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 AI법은 AI의 종류를 ‘허용 불가 위험’ ‘고위험’ ‘제한된 위험’ ‘저위험’의 네 가지로 분류해 상당히 정밀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AI법은 ‘위험’이란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향’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가치 중립적인 위치에서 AI를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이 ‘고영향’이란 단어로 규제한다는 것은 인간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규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AI법은 규제 범위에서 유럽 AI법과 차이가 있다. 우리 법은 국방 또는 국가안보 목적으로 개발·이용되는 AI에 대해서만 규제 적용이 제외된다. 반면 유럽 법은 이외에도 시장 출시 또는 서비스 전 단계의 연구·시험·개발 등의 경우, 그리고 오로지 과학적 연구·개발 목적으로 개발·이용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하고 있다. 이 점은 활발한 연구개발과 산업의 기초체력을 진흥하기 위한 관점에서 아쉬운 면이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실험할 때에는 상상력을 동원해 자유롭게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규제보다 ‘일자리 친화’ 명심해야
이번 AI기본법은 큰 틀에서 AI 산업의 진흥과 규제의 방향을 정한 것일 뿐이다. 실행을 위한 세부적인 사항은 시행령으로 정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AI를 고영향 AI로 지정할 것인지 좀 더 세밀하게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고영향 AI로 지정된 것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이제 한국의 AI 산업은 시행령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기본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산학 연관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한다고 한다. TF에는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법·제도 분과위원회, 관계 부처, 산업계·학계·연구기관 등 전문가 그룹이 폭넓게 참여할 예정이다. TF의 핵심 논의 대상은 AI기본법에서 강조한 고영향 AI의 정의와 규율 방안이 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AI를 규제할 때 절대 유럽 방식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디지털 혁명에서 뒤져 피해를 본 유럽은 수비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수비 중심으로 경기해 승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AI를 무방비 상태로 놔둬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강하게 규제해 산업 자체가 위축돼 발전하지 못하면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본다. 즉 AI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AI 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현대 산업사회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돼 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윤리적이고 좋은 정책을 펼친다 해도 경쟁국에서 더 산업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면 산업은 그쪽으로 가버린다. 국가 간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말은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산업의 규제를 논할 때는 반드시 경쟁국의 규제 정도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규제하되 국내 산업이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타협해야 한다. 정말로 세계는 하나의 플레이 그라운드로 통합돼 있다. 시행령을 준비할 때 ‘친 AI 태도’ 또는 ‘친 일자리 자세’를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이광형 KAIST 총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