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중학생 야구 선수 틈에서 긴 생머리를 한 여자 선수가 눈에 띄었다. 발이 빨랐고 수비도 수준급이었다. 3루에서 공을 잡아 1루로 던져 타자를 잡아내는 등 송구 능력도 괜찮았다. 구속 120㎞ 안팎의 빠른 직구를 때려 안타를 만들었고, 간간이 보인 번트 능력도 뛰어났다. 남자 야구 선수 사이에서 경쟁하고 있는 이지민(15·청주 이글스 U15)은 기량으로 경쟁하고 실력을 입증한 ‘똑같은’ 선수였다.
이지민은 16일 강원도 인제 야구장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 여자 야구 국가대표 선수가 돼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지민은 이날 하늘내린인제 우수중학교 초청 야구 페스티벌 경기에서 좌익수, 3루수 등을 맡으며 공수에서 수준급 기량을 과시했다. 상대팀 감독과 대회 관계자들은 “중학교 평균 이상 기량을 갖고 있다”며 “공격과 수비 모두 충분히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이지민은 청주 우암초등학교 6학년 때 체육 수업에서 T볼을 접하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청주 동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곧바로 야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이지민은 “공을 치고 던지는 게 재미있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다”고 말했다. 이지민은 “아무래도 나 빼고 모두 남자 선수들이라 대화에 끼는 게 쉽지 않다”며 “옷을 갈아입을 때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등 몇몇 불편함은 있지만 그건 개의치 않는다”고 웃었다.

어린 여자 선수들은 대부분 야구가 아니라 소프트볼 선수를 꿈꾼다. 소프트볼 팀은 고교 팀, 대학 팀도 있고 실업 팀도 적잖이 존재한다. 이지민은 “나도 처음에는 소프트볼 선수가 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며 “하지만 내 꿈은 당당한 여자 야구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래도 많은 면에서 또래 남자 선수들보다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지민은 많은 훈련과 개인 훈련으로 보완하고 있다. 박지승 청주 이글스 감독은 “경기나 훈련에서 실수를 하거나 부족한 게 있으면 혼자 남아서 스스로 개인 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사령탑이 된 것은 지난 3월이다. 박 감독은 “부임 초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야구에 대한 진정성은 우리 팀에서 최고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당당하고 어엿한 야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지민은 올해를 끝으로 중학교를 졸업한다. 이지민은 “천안에 있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해 수업을 받으면서 야구는 천안 주니어 여자 야구단에서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여자 야구팀이 없기 때문에 이지민이 야구 선수 생활을 하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이지민은 “어디에서든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어떤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다”며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 어떻게든 야구 선수 생활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하늘내린인제 우수중학교 초청 야구 페스티벌’은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인제 야구장에서 열린다. 인제군야구소프트볼협회가 주최하고 인제군이 후원하는 대회로 전국 14개 중학교 팀이 참가해 페스티벌 형식으로 행사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