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728조 '확장 유턴'…1년만에 나라빚 142조 는다 [2026년 예산안]

2025-08-29

이재명 정부가 내년 예산을 728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올해보다 총지출이 50조원 이상 늘어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증액이다. 직전 정부와 달리 확장 재정의 길로 가겠다는 확실한 ‘유턴 선언’이다. 재정으로 급격한 성장세 둔화를 방어하면서, 미래 먹거리 산업에도 투자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다만 지출 확대에 방점을 찍으면서 국가부채는 1년 새 무려 140조원 넘게 증가한다. 중장기 재정 운용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2026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총수입은 올해(651조6000억원) 대비 22조6000억원(3.5%) 늘어난다. 총지출은 올해 (673조3000억원)보다 54조7000억원(8.1%) 증가한 728조원으로 확정했다. 본예산 기준으로 처음 700조원 시대가 열렸다. 2022년 600조원을 넘어선 뒤 불과 4년 만에 앞자리를 바꿨다.

내년 지출 증가 규모는 2022년(49조7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고, 적어도 올해와 내년에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는 절박한 고민이 담겼다”며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란 구조적 요인과 생산성 둔화가 맞물려 잠재성장률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반등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인공지능(AI) 분야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한다.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과 AI를 접목한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관련 예산을 올해 3조3000억원에서 내년 10조1000억원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바이오헬스, 주택∙물류 등 생활밀접형 제품 300개의 AI 적용을 지원하는 ‘AX-스프린트 300’ 사업을 신설하고 9000억원을 투입하는 게 대표적이다. 인프라 차원에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에 2조원 이상을 들인다.

연구개발(R&D) 예산도 역대 최대 수준인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우선 ‘A(인공지능)∙B(바이오)∙C(콘텐츠)∙D(방산)∙E(에너지)∙F(제조)’ 첨단산업 분야별 핵심 기술개발에 10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첨단 분야 국내외 인재 양성 규모를 기존 2만7000명에서 3만3000명으로 늘리는 차원에서 연구생활장려금을 확대하는 등 3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국방비도 대거 증액했다. 최첨단 전투기 개발과 첨단 무기 체계 확보에 올해보다 1조4000억원 증가한 3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이를 통해 한국형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연구에도 착수한다. 병사 월급이 급격히 오르면서 ‘역차별’ 논란이 있던 초급간부의 처우 문제 해결에도 나선다. 5년 미만 초급간부 보수를 최대 6.6% 인상하고, 각종 수당을 현실화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지방 재정을 보강하기로 했다. 지방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포괄보조금 규모를 올해 3조8000억원에서 내년 10조6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아동수당 등 7개 주요 재정 사업에 인구 감소나 지역 낙후도를 반영해 우대하는 원칙도 시범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비수도권 167개 시군구를 특별∙우대∙일반지역으로 나눠 지원을 차등하는 방식이다. 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해 거점 국립대를 지원하는 예산도 5000억원 증액했다.

이재명표 민생예산도 다수 포함됐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기존 만 7세 이하에서 만 8세 이하로 상향한다. 이를 위해 5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한다.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해 미래세대 자산형성을 지원하고, 비수도권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청년을 위한 근속 인센티브도 신설한다. 기초연금 월 지급액은 6000원 인상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 규모도 110만 개에서 5만 개 더 늘려 잡기로 했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은 8%대로 문재인 정부에 버금가는 확장 재정이다. 세수 여건은 차이가 있다. 문 정부 초반엔 세수 증가율이 2017년(9.4%), 2018년(10.6%) 등으로 높았고, 이 2년 동안에만 세수가 40조원가량 더 들어왔다. 하지만 최근엔 2023년부터 2년 연속 87조원의 세수 구멍이 났다. 올해도 세금 수입액을 미리 줄이는 세입경정을 단행했을 정도로 빠듯하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경기 회복을 전제로 내년 세수가 20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봤지만 장담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 예상대로 세수가 늘어난도 해도 지출 규모를 감당할 순 없다. 정부도 들어오는 돈이 써야 할 돈보다 적은 상황에서 ‘솔직한 적자’를 택했다. 정부가 예산안에 담은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무려 109조원이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으로 해당 연도의 나라 살림살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관리재정수지는 올해도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111조6000억원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 연간 나라 살림이 100조원 단위로 구멍이 나는 건 유례 없는 일이다. 그런데 2년 연속 비슷한 규모의 적자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연히 국가 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말 국가채무는 1415조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41조8000억원(본예산 기준)이나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51.6%로 사상 처음 50%대에 진입한다.

비율 자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국과 비교해 아직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속도다. 지난 5월 국제결제은행(BI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4년(9월 말 기준)까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9%에서 45.3%로 5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51.1%에서 107.4%로 2.1배로 늘었다. 기축통화국(국제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통화를 보유한 국가) 미국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2009년 359조6000억원에서 2019년 723조2000억원으로 10년 만에 약 2배로 커졌다. 그리고 7년 만에 다시 2배 수준인 1400조원대에 진입하게 됐다. 덩치(부채 규모)가 커졌는데도 증가 속도는 예전보다 더 빨라졌다. 원금도 문제지만 이자 부담도 상당하다. 실제로 올해 국고채 이자로 나가는 돈만 30조원이 넘는다.

내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4.0%로 올해(4.2%)에 이어 2년 연속 4%를 넘어선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3% 이내로 유지한다는 정부의 재정준칙도 무의미해졌다. 그런데도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5년~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엔 재정 건전성을 개선할 뚜렷한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 전망대로라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9년 58%까지 늘어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쓸 때 쓴다는 원칙을 세웠으면 중장기 재정 운용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데 재정 적자를 당연시하는 모습에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나랏빚은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야별로는 보건∙복지∙고용 부문의 예산이 가장 많이 늘었다. 올해보다 20조4000억원 증가한다. 기준중위소득(각종 복지 지원을 할 때 기준이 되는 전 국민 소득의 중간값)을 높여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인상한다. 의료급여는 부양의무자가 소득 중 일부를 수급자에게 생활비로 지원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부양비 제도를 폐지해 환자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일반∙지방행정(10조4000억원), R&D(5조7000억원), 국방(5조원) 등이 뒤를 이었다. 외교∙통일은 12개 부문 중 유일하게 예산이 줄어든다. 올해보다 9.1% 감소하는데 그간 꾸준히 증가했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이 줄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1조9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정책금융 패키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화석연료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융자∙보조 규모도 올해 5000억원에서 내년 9000억원으로 확대한다. 그밖에 국회와 대통령실의 세종 이전을 위한 설계 비용 등도 내년 예산안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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