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8명 투숙객 중 3명 체포"…범죄사실 인정하는 자진출국 "나쁜 선례 될수도"

2025-09-08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 단속으로 쑥대밭이 된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인근에 위치한 한 게스트하우스엔 지난 4일(현지시간)부터 주인 없는 방 3개가 생겼다. 불법 체류자로 몰려 체포된 한국인 직원 3명이 쓰던 방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임태환 조지아 동남부 연합한인회장은 7일 중앙일보에 “한국인 직원 8명이 투숙하고 있었는데, 단속 이후 3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며 “간신히 체포되지 않고 귀가한 이들도 본사의 ‘즉시 귀국’ 지시를 받고 대부분 귀국한 상태”라고 말했다.

짐만 덩그러니…재떨이엔 ‘한국산’ 담배 꽁초

게스트하우스의 빈 방은 이미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임 회장은 “현대차와 LG 관계사 직원들이 체포 작전 직후 일정을 훨씬 앞당겨 귀국길에 올랐다”며 “시설에 구금된 3명의 짐이 있는 방은 아직 청소하지 못하고 일단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구금 시설에서 곧장 귀국하거나 추방될 경우 짐을 한국으로 보내줘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이 떠난 게스트하우스 밖 재떨이엔 한국산 담배 꽁초가 보였다.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단기 체류자였다는 의미다.

한국인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던 주변 다른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은 물론, 직원들이 기숙사처럼 사용하던 집들도 갑자기 텅 비었다. 인근 게스트하우스 운영자는 본지에 “단속 직후 투숙객 대부분이 즉시 출국길에 올랐다”며 “이번 단속으로 숙박시설을 비롯해 음식점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생존’ 근로자 “중범죄자 다루듯 했다”

근로자들의 단골 식당엔 체포를 피한 사람들이 모여 검거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검거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셉 김(가명)은 “나는 영주권자이고 미국 법인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풀려났다”며 “반면 단기 비자로 온 한국 근로자들은 중범죄자처럼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반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를 먼저 열외한 뒤 비자의 종류에 따라 근로자들을 강압적으로 분류해 강제로 벽을 보고 서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충분히 소명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며 “오히려 소통이 잘 안 되면 더 강압적으로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연행해갔다”고 전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 체포를 피했다는 동료들도 “중앙일보를 통해 푸른색 수용복을 입고 구금된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며 “모두 전문 기술자로 왔을텐데 남의 나라에서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본 한국의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고 했다.

검거 당일 외부에 있던 이유 등으로 참사를 피한 한 하청업체 근로자는 “애초에 경제활동이 가능한 주재원 비자(L-1 또는 E-2)나 하다 못해 인턴용 비자로 입국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포된 사람 중 대기업 소속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인 이유는 대기업이 돈이 많이 드는 정상적 비자 발급 대상을 본사 직원으로 최소화하고 비용과 위험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겼기 때문”이라며 “5~6차 하청업체들은 비용 때문에 B1, B2와 같은 단기 방문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제)로 직원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현지 하청업체 소속 제임스 박(가명)은 “2005년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건설 때는 주지사와 협력해 단기 비자 소지자가 공장 건설 중에만 임시로 일할 수 있도록 ‘임시 허가증’을 발급했다”며 “이번엔 대기업 원청업체들이 위험 부담을 무책임하게 하청업체에 떠넘기면서 사태를 키웠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일괄 ‘자진 출국’ 놓고도 “개인에게 책임 전가”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근로자 전원을 귀국시킨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근로자 모두를 이민법을 어긴 범법자로 만들어 결국 근로자 개인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불법 체류로 적발된 경우 크게 자진 출국, 강제 추방, 이민 재판 등 3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현지 변호사에 따르면 강제 추방의 경우 당사자는 미국 입국이 어렵게 될 가능성이 있다. 재판을 받을 경우 시간 및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날 구금된 인원 모두에게 자진 귀국 동의서 작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자진 귀국은 법 위반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불법 체류 기간이 180일을 넘지 않으면 미국으로의 재입국이 가능하지만, 위법 기록이 남기 때문에 ESTA 발급 등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강제 추방되면 사실상 재입국이 영원히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진 출국을 택했다”며 “다만 이럴 경우 ESTA와 B1 비자가 허용하는 단순 회의 참석을 포함해 무죄에 해당하는 사람까지 불가피하게 위법을 인정해야 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근로자에게 동의서를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만약 개인이 위험 부담을 안고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전세기 탑승을 거부할 경우 정부로서는 막을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나쁜 선례’될 가능성…“현지 여론에도 악영향”

대미 투자 업무를 다수 담당해온 로펌 넬슨 멀린스의 앤드류리 변호사는 “자진 출국이 빠른 해결책인 것은 맞지만, 죄가 없는 사람까지 유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할 경우 유사 사례에 대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근로자들이 귀국한 뒤 새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도 대미 투자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한인들도 이번 사태가 지역내 여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 공장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서 실제 고용 효과는 미미하다”며 “이미 현지 채용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가중된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인 불법 고용’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경우 여론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울산이 ‘현대 시티’가 된 이유는 지역내 상당수가 해당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돼 있기 때문인데, 서배나에 한국의 대규모 공장이 있지만 한국 기업과 관련된 가정은 거의 없다”며 “장기적으로 지역내 상생 구조를 만들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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