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오너나 CEO(최고경영자)들은 수줍음(?)이 많아 대외 메시지를 잘 내지 않는다. 다만 일제히 내놓는 시기가 딱 한 번 있는데 매년 새해 초가 그 때다. 한 해를 관통하는 경영 화두를 임직원들에게 제시하는게 보통인데, 올해 신년사엔 유독 '잿빛' 전망이 가득했다.
경영진들은 일제히 '위기', '경고', '리스크'를 거론했다. 배터리, 석유화학, 반도체까지 '도장 깨기' 하는 중국의 대공습,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전쟁으로 얼룩진 국제정세 등 복합 위기에 빠진 현 상황을 고려한 표현이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단어에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미풍이던 중국의 침공은 태풍이 됐다. 배터리 3사 점유율은 3년 만에 20%대로 내려앉았고 중국 기업 점유율은 50% 이상이다. '만리장성'을 등에 업었다고 하지만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최소한 NCM 배터리는 주행거리 경쟁력에서 앞섰으나 LFP 배터리의 주행거리는 1000km까지 소개됐다.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일제히 러브콜까지 보낸다.
석유화학은 풍전등화다. 오랜 적자에 빚을 상환하지 못할 것이란 롯데케미칼 사태로 재계 6위 롯데는 그 위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채권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건 것은 삼성이 서초 사옥을, LG가 트윈타워를 매물로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28년까지 석유화학 공급과잉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딜'로는 숨통을 트이기에 무의미하다.
삼성전자는 회복할 기미가 없다. 그래도 삼성전자라고는 하나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다는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삼성전자와의 비교를 거부하던 SK하이닉스는 서양인 콧대를 만들며 오히려 우위를 내세우고 있다. 기대가 없으니 주가는 4개월 내 5만원이다. 10만원 이상을 외치던 애널리스트도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여기에 '치킨게임'의 황제인 중국은 반도체 시장에서도 빠르게 뒤쫓고 있다.
20일 열리는 트럼프 시대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 아래 관세 폭탄, 바이든 행정부 정책 폐기, 기후 협약 탈퇴, 무역 전쟁 등이 진행될 전망이다. 최근 캐나다 총리는 졸지에 미국의 51번째 주지사(Governor)까지 됐는데 G8의 수장을 망신준 트럼프가 외국 기업을 감싸줄지 의문이다.
재계 총수 중 한 명은 지금을 절체절명의 위기라 진단하며 근원적 경쟁력을 갖추자고 주문했다. 하지만 기업의 힘만으론 외풍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입법을 통한 제도적 지원과 외교적 해법이 절실한데 오히려 현실은 기업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고 있고 기업을 위한 지원책은 잠든 상황이다. 기업들이 새해에 추위를 정면으로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