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조주완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 대부분을 재신임하는 한편, 가전구독이나 HVAC(냉난방공조)와 같은 신성장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등 소폭의 변화를 시도했다. 여전한 불황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변수로 내년에도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이 예상되는 만큼 현 경영체제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21일 LG전자는 김영락 한국영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HVAC(냉난방공조)를 별도 본부로 떼어내는 등 내용의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가전구독 사업을 이끈 김영락 신임 사장과 곽도영 리빙솔루션사업부장, 김병열 HS오퍼레이션그룹장, 이상용 VS연구소장, 조휘재 IP센터장 등 총 42명이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3년간 불황 속에서도 LG전자의 성장을 이끈 조주완 대표는 유임됐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부회장 소식은 없었지만, 다시 한 번 CEO의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그룹의 변함없는 신뢰를 재확인했다. H&A사업(생활가전)과 HE사업(홈엔터테인먼트)을 이끈 류재철 사장, 박형세 사장도 각각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LG전자가 기존 경영진을 유지한 것은 그간 성과가 윤곽을 드러내는 현 시점엔 변화보다 '안정', 즉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LG전자는 올해도 가전과 구독 사업을 중심으로 순항하고 있다. 3분기에도 영업이익(7519억원)은 물류비 상승 여파에 뒷걸음질 쳤지만, 매출(22조1764억원) 만큼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러면서도 LG전자는 필요한 영역엔 힘을 실어줌으로써 가치와 솔루션 관점의 미래성장이란 그룹의 경영방침을 재차 공유했다.
사업을 크게 ▲HS사업본부(AI홈 솔루션) ▲MS사업본부(미디어 엔터테인먼트) ▲VS사업본부(차량 솔루션) ▲ES사업본부(클린테크)로 재편하고 각각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게 대표적이다.
세부적으로 HS사업본부엔 LG 씽큐의 기획·개발·운영을 담당하는 플랫폼사업센터를 직속으로 두고 집 안을 넘어 소비자 생활 전반을 케어하는 AI홈 솔루션 사업을 주도하도록 했다. 로봇청소기, 이동형 AI홈 허브 등과 시너지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기존 BS사업본부의 로봇사업도 넘긴다.
MS사업본부 역시 BS사업본부에서 IT·ID사업을 이관 받아 TV 사업과 통합 운영하며 하드웨어·플랫폼 혁신에 주력한다. 스마트 TV 중심이던 웹OS 적용 제품을 모니터, 사이니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등으로 확대하며, 웹OS를 실내외 통합 콘텐츠·서비스 플랫폼으로 키운다.
VS사업본부엔 부품을 넘어 차량 전반에 걸친 혁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눈여겨 볼 대목은 ES사업본부의 신설이다. B2B(기업간거래) 성장의 한 축인 냉난방공조를 분리한 조직인데, 수주 기반으로 운영되는 사업의 본질과 시장·소비자 특성을 고려할 때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회사 측은 판단했다. 특히 ES사업본부는 전기차 충전사업까지 확보해 매출 1조원 이상 규모 유니콘 사업으로의 조기 전력화를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LG전자는 본부에도 변화를 줬다. 해외영업본부 산하에 B2B사업역량강화담당을 추가하고, CSO부문엔 미래전략에 전사 AI(인공지능) 컨트롤타워 역할을 더했다. 전사 디지털전환 총괄조직 CDO부문은 DX센터로 재편해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경영성과 창출을 추진한다. 이들 모두 사업 효율을 높임으로써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재계에선 새롭게 경영 행보에 돌입하는 조주완 사장이 앞서 제시한 비전과 중장기 사업 전략대로 회사를 성장 궤도에 안착시킬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작년 7월 비하드웨어, B2B, 신사업 등을 3대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하며 2030년 이들의 매출 비중을 전체의 50%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생활가전이나 TV와 같은 전통적인 사업의 의존도를 낮추고 콘텐츠와 서비스, 구독, 솔루션 그리고 냉난방공조 등 신사업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전장사업와 관련해서도 글로벌 10위권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에선 전사 중·장기 전략 '2030 미래비전'을 가속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제품 단위로 나뉜 사업본부 체제를 넘어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플랫폼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면서도 조직 간 시너지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