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54)이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운데 그의 대표 작품인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인공지능(AI)으로 복원돼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광주시청에서 열린 한강 노벨상 수상 기념 시민 축하 행사장에는 AI 홀로그램을 통해 '소년 동호'가 등장했다.
동호는 5·18 당시 최후 항전을 벌이다 희생된 실존 인물인 고(故) 문재학 열사의 이미지를 형상화했으며 김형중 인문도시광주위원회 위원장이 동호가 돼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문재학입니다"로 말문을 뗀 그는 "오늘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날이니, 소설 속 동호의 이름과 모습으로 왔다. 그냥 소년 동호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그해 5월, 저는 그 처참하고 슬픈 시신들을 수습하고 유족들의 오열을 지켜보면서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라고 반문했다. 맞다. 저는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죽었다"고 했다.
동호는 "'집에 가자'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며 "여섯 시에 가겠다는 저의 말,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그 순간 잠깐 엄마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봤다"며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도 회상했다.
동호는 "혼에게는 몸이 없어도, 눈을 뜨고 많은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다. 죽은 사람의 혼은 죽은 육신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드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여러분들의 기억이 제 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강 작가와의 첫 만남도 떠올렸다.
동호는 "어느 해 겨울 추위 속에, 제가 시신들을 수습하던 구 상무관 계단에 하염없이 앉아 있던 한강 작가의 모습을 기억한다"면서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지도록 거기 앉아 소년 동호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저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던 모습도 기억한다. 그 간절함에 이끌려 제 혼이 움직였다"고 했다.
동호는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펼치던 여러분의 손길 곁에 저는 항상 같이 있었다. 제 후회 없는 마지막 삶이, 읽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며 "저는 이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럴 기회를 준 한강 작가에게 무척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고 했다.
동호는 "오늘은 바로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영광스럽게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라며 "책을 펼치는 순간 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다. 오월 광주의 기억과 함께 소년 동호는 꼭 돌아온다"고 끝을 맺었다.
이날 현장에서 동호이자 아들 문재학 열사의 홀로그램을 지켜본 김길자 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문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군과 끝까지 맞서 싸우다 총격에 숨졌다. 당시 문 열사는 열일곱 살로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그는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모티브가 됐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냈다.